Ⅰ. 머리말
자동차산업은 종합기계산업으로서 '산업중의 산업'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전후방 연관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매우 크다. 더욱이 최근에는 전자기술의 폭넓은 응용으로 자동차가 '달리는 전자장치'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으면서 21세기에도 핵심산업의 위치를 굳게 지켜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자동차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일반인과 전문가들의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자동차산업의 발전은 한국경제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하면서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대되어 왔다. 자동차산업은 97년 현재 제조업 고용의 8.30%, 제조업 생산액의 10.16%, 전산업 수출의 7.49%, 제조업 부가가치의 9.82%(한국자동차공업협회, 1999)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전후방산업연관효과가 매우 큰데, 최근 한 연구(팽성일, 1999)에 의하면 특히 후방연쇄효과가 지난 25년간 꾸준히 상승하여 1995년에는 23개 산업중 가장 높은 1.203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막중한 자동차산업이 97년 이후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였다. 97년 7월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지정된 데 이어 97년 12월에는 쌍용이 대우에 인수되었고, 97년 말에 시작된 IMF 구제금융사태로 가동률이 50%를 밑도는 가운데 98년 3월에는 삼성차가 생산을 개시하여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98년 11월 기아와 아시아를 현대가 인수하는 것으로 기아사태가 마무리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99년초에 현대의 경영진이 교체되고 이어 현대차써비스와 현대정공 자동차부문이 현대자동차에 통합되었다. 현대의 기아 인수가 결정된 직후 생산이 중단된 삼성자동차는 결국 금년 여름 법정관리에 넘겨졌고, 곧 이어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가 그룹의 워크아웃으로 사실상 부도 상황에 처하였다. 지난 2년간 개별 기업들의 변화를 나열해 보면 숨이 차기까지 한 고난과 혼돈의 길들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개별기업들의 도산과 인수 등에 그친 것이 아니라 98년 여름의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99년 7월부터의 일본차 수입개방, 외환위기 이후 해외자본에 의한 수십개 부품기업들의 인수,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통합과 르노의 닛산 인수로 대표되는 세계 자동차업계의 지각 변동 등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내외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독자적 생존 가능성을 대단히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여년간 고속성장을 이루어 95년에는 세계 5위의 생산대국으로 뛰어올랐던 한국 자동차산업이 어떻게 이런 허망한 결과를 낳았는가? 현대, 현대정공, 기아, 아시아, 대우, 대우중공업(조선), 쌍용, 삼성상용차, 삼성자동차 등 제조 9사와 현대차써비스, 기아자판, 아시아자판, 대우자판 등의 판매4사를 포함하여 5대 그룹 13개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는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외한 전 자동차회사의 몰락이었다. 가히 '공멸'이라 할 만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대우, 쌍용, 삼성의 처리가 아직도 혼미를 거듭하고 있고 또 현대와 기아의 통합 구조조정도 여전히 진행중이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눈부신 성장과, '공멸'이라는 그에 못지 않는 뚜렷한 그림자를 동시에 설명하기 위해서는 재벌이라고 하는 자동차산업 경영 주체의 행태를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졸고(1998a)에서는 재벌이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자 동시에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재벌의 역동성이 기계산업의 불모지에서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세계 5위 생산대국으로 올려놓았지만, 정부의 지원과 노동자, 소비자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고속성장은 형평성뿐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문제를 발생시키게 된다고 보았다. 이후 필자는 졸고(1999b)에서 한국 자동차산업의 재무지표를 분석하여 재벌들의 과잉투자를 포함하는 독특한 경영 행태가 바로 자동차산업 위기의 요인임을 증명해 보이고자 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기존 연구들을 요약, 보완하면서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 구조를 설명하고, 그에 기반하여 구조조정 과정에 대한 평가와 21세기의 진로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