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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운동에 대한 고찰 - 노동자권력을 향한 전진 편집위원회

현장연대 2003.08.07 15:15 조회 수 : 1137 추천:39

비정규직운동을 넘어 계급투쟁으로
대공장운동의 혁명적 전진으로
- 남한 비정규직운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 -

  작년 한국통신계약직노조와 '전국비정규직노동자모임'(이하 전국모임)의 해산으로 97년 구조조정 투쟁과 함께 시작된 남한의 비정규직운동은 그 한 순환을 마감했다. 전국모임과 한통계약직 투쟁은 지금까지 비정규직투쟁이 거쳐온 두 시기를 각기 대표하는 운동이었다. 97-99년 구조조정에 의한 고용불안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급속한 증가는 전국모임이라는 전투적인 활동가모임을 잉태했다. 2000년과 2001년에는 비제조업·중소영세사업장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자생적인 투쟁이 폭발했으며 한통계약직노조의 500일이 넘는 극한 투쟁은 그 시기를 상징하는 가장 크고 치열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 두 시기를 통해 기존의 정규직 운동질서는 전국회의나 현장조직으로 대표되는 전투적 현장주의 운동의 차원에서든 관료들이 주도하는 조합운동의 차원에서든 비정규직 문제를 전혀 받아 안지 못했다. 이 속에서 비정규직투쟁은 정규직운동과 평행선을 긋는 특수하고 자립적인 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러한 정규직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의 분리는 노동운동의 계급적 발전을 가로막고 두 운동 모두의 몰락과 붕괴를 불러왔다.
  최근 울산과 아산 등 대공장의 하청투쟁을 통해 비정규직운동은 새로운 계기를 맞고 있다. 이 투쟁들이 과거의 한계를 답습하며 '비정규직 운동'에 머무르지 않고, 진정 새로운 계급운동의 출발점이 되기 위해서는 구태의연한 전투파 결집을 뛰어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선진노동자들의 목적의식적인 활동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노동조합주의와 개량주의가 지배하는 운동의 계급적 혁신과 혁명적 노동계급운동의 부활을 위한 전제 조건은 이 속에서 정규직 '운동'과 비정규직 '운동'이라는 두 개의 분열된 운동을 극복하고 노동자운동을 단일한 계급투쟁으로 이끌어 나갈 보다 계급적인 새로운 선진노동자 운동질서가 형성될 때 비로소 마련될 것이다.  

정규직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의 첫 번째 분리 국면 :
대공장 구조조정 분쇄투쟁과 비정규직운동의 형성

  정규직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의 분리의 첫 번째 국면은 99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7년 말 전국모임의 결성으로 등장한 최초의 비정규직운동은 서구와 달리 금속 대공장에서의 전투적 운동, 전투적 현장주의의 전통을 모태로 태어났다. 비정규직이라고 지칭되는 계약직, 사내하청과 같은 고용형태는 물론 그 훨씬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자본의 구조조정과 그로 인한 고용불안,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급속한 확산은 이를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개념화시켰다.
  남한에서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은 말 그대로 정규직 고용이 아닌 모든 고용형태를 포괄하는 일반적인 의미를 획득했다. 서구에서 비슷한 고용형태를 지칭하는 반사회적(anti-social), 비전형적(atypical), 임시적(temporary, contingent) 등의 용어 중 남한에서 쓰이고 있는 비정규직만큼 넓은 의미를 가진 것은 없다.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계급운동이라기 보다는 시민사회적인 권리보호 운동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영국과 미국의 신노조운동이나 사회적 조합주의가 이러한 하층 노동자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그들의 관심은 여전히 노조 조직률의 확대나 노동운동의 '사회적' 관심으로의 확장이라는 측면에 머물러 있다. 이와 달리 남한에서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은 말 그대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의식으로, 가장 직접적으로 정규직과의 차별에 노출되어 있던 금속 대공장의 사내하청노동자로부터 출현했다. 남한의 비정규직운동은 정규직과의 차별을 기초로 비정규직 고용을 양산하고 노동조건의 차이를 심화시키는 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에 대한 저항 속에서 형성되었다.
  금속 대공장, 특히 조선업에서 그 형성기 때부터 존재하던 사내하청이라는 명목의 불법 인력파견은 93-94년 신경영전략과 97-98년 구조조정이라는 두 차례의 계기를 통해 크게 확대되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로 조직된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호황국면 속에서 꾸준히 개선되었지만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처지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 때문에 90년대 중반이 되자 이들 간 노동조건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으며, 정규직과의 차별에 항의하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소규모로나마 차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본의 신경영전략에 잠식되며 조합주의적으로 경사하고 있던 대공장의 정규직노조는 사내하청노동자의 투쟁을 받아 안지 못했다. 이것은 98년과 99년 대공장에서 구조조정 분쇄투쟁이 이어질 때에도 계속되었다. 자본은 정규직에 대한 인원 구조조정에 앞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을 대량해고(계약해지)시켰으나 대공장 노조의 조합원들은 먼저 해고되고 있는 같은 공장의 사내하청노동자의 처지에 무관심했다. 대부분의 공장에서 조직되지 못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조용히 일터를 떠났다. 그러나 아시아자동차와 같이 대량해고에 반대하는 하청노동자의 투쟁이 벌어졌던 사업장에서도 정규직노조는 하청노동자의 문제를 자신들과 상관없는 문제로 생각했으며 오히려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가로막고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형성된 전국모임은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이하 전국회의)의 현장조직들과 동일하게 민주노총 주류의 개량화·관료화에 맞서는 금속 대공장의 전투적 운동으로서의 성격, 즉 전투적 현장주의 운동의 성격을 분명하게 가졌다.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서는 생산현장 중심의 전투적 성격을 명확히 표방한 전국모임의 이러한 성격은 서비스나 운송 등 비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권리보호 운동의 성격을 띈 미국이나 유럽의 비정규직 조직화 흐름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전국모임 결성의 주축이었던 아시아자동차용역대책위와 현중외주노동자모임의 만남이 전국회의에서 이루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국모임의 형성은 전국회의 운동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은 대공장의 현장조직 운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한계 속에서 전국회의 및 현장조직이라는 정규직 운동질서와 전국모임이라는 비정규직 운동질서는 그 유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별개의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다.  
  전투적 현장주의는 민주노조운동의 초기부터 면면히 이어온 남한 선진노동자 운동의 특수한 자기표현이자 존재양식이었다. 90년대 중반 노동운동발전전략 논쟁과 민주노총의 형성과정을 거치며 국민파와 중앙파로 구현된 상층관료적·개량주의적 흐름은 민주노조운동의 주류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민주노조 건설시기 노민추의 형태로 존재했던 남한의 선진노동자 운동은 이러한 흐름에 대당하여 현장조직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자신의 조직적 질서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97년 총파업은 국민파 지도부와 금속연맹을 중심으로 한 중앙파 관료들의 투쟁회피주의를 명확히 폭로했다. 이어진 '국민승리21'과 같은 탈계급적 정치세력화 흐름 속에서 현장조직이나 그와 유사한 활동가모임으로 존재하고 있있던 금속 대공장의 선진노동자들은 전국회의로 결집했다. 그것을 계기로 대부분의 금속 대공장에서 선진노동자 운동은 현장조직으로 재구축 되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의식화되고 정치화되지 못한 선진노동자 운동이 가진 미성숙의 표현이었으며 그 자체로 계급적 운동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뚜렷한 전투성과 현장지향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정치적 색채에 있어서는 노진추, 노힘과 같은 민중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적 경향이 혼재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전투적 조합주의라는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성격은 전국모임도 동일했다. 전국모임은 지역모임을 기초로 했지만 실제로 현장활동을 펼치는 것은 목포모임과 울산모임밖에 없었으며 그 외에는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개별 활동가들이 모인 느슨한 집단에 불과했다.
  99년 한라중공업 파업투쟁 과정에서 나타난 두 운동의 정면충돌은 그런 약점들의 결과인 동시에 두 운동의 분리를 고착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98-99년 전국회의 현장조직 출신 노조지도부가 이끌었던 대공장의 구조조정 분쇄투쟁은 모두 패배로 끝났다. 기아 평등회의 고종환 집행부나 현자 민투위의 김광식 집행부는 그들이 비판했던 중앙파나 국민파 관료들과 다를 바 없는 무력하고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노동조합주의와 완전히 단절하지 못한 현장조직 운동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전국회의 초대 소집권자이면서 전국회의 내에서 가장 전투적인 목소리의 대변자였던 권성원 위원장의 한라중공업 파업투쟁은 계속되는 대공장 구조조정 분쇄투쟁 전선의 후퇴를 반전시키고 그동안 실추된 전국회의의 명예를 회복할 가장 좋은 기회였다. 이것은 한라중공업에 사내하청노조 건설을 준비하고 있던 전국모임도 마찬가지였다. 전국모임 초기의 상층중심적 선전활동은 성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전국모임의 전투적이고 현장지향적인 정서와도 모순적이었다. 이러한 모순은 전국모임 내에서 부문주의적·노동조합주의적 경향과 전투적 현장주의적 경향의 대립을 전면적으로 드러냈다. 한라하청노조 건설투쟁은 전국모임에게도 내부의 부문주의·조합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 계급적 운동으로 전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99년 봄 전국모임은 자본의 무자비한 탄압을 뚫고 한라하청노조를 건설했다. 한라중공업 노조의 권성원 집행부는 부도사업장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공장 파업을 이끌어냈다. 한라 투쟁을 통해 전국모임과 전국회의라는 두 개의 전투적 운동질서가 하나의 운동으로 융합될 수 있는 지반이 마침내 형성되었다. 그러나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동요를 보이던 권성원 집행부가 한라하청노조를 투쟁에서 배제함으로써 이 지반은 산산히 깨지고 말았다. 한라 투쟁은 결국 노조집행부에 의해 직권조인이나 다름없이 마무리되었고 그것은 98년부터 이어진 대공장 구조조정 분쇄투쟁이 급격히 소강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한라 투쟁을 기점으로 전국회의와 전국모임으로 대표되는 전투적 현장주의 운동은 서서히 붕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투적 현장주의가 조합주의로의 하락되는 것을 막고 계급적으로 혁신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국회의와 전국모임이 각기 대표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선진노동자 운동이 하나로 융합되어야 했다. 연이은 패배에 대한 반성 속에서 노동조합으로부터 현장조직의 독자성의 확보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장조직 운동이 비정규직투쟁을 받아 안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국회의는 투쟁 과정에서도 투쟁 이후에도 한라하청노조의 배제 문제에 대해 명확한 운동적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 전투적 현장주의 운동이 가진 조합주의적 한계는 한라 투쟁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라 하청투쟁 이후 비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노조건설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면서 전국모임 내에서 부문주의·노동조합주의적 경향은 전국모임을 전국비정규직단일노조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는 김기일 대표에 의해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전국모임 성원들의 대다수는 활동가 조직의 유지를 주장했지만 실제로 활동가조직과 노조활동의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2000년 하반기 핵심사업으로 추진했던 전국비정규직노조협의회가 실패하면서 전국모임은 구심력을 잃고 급속하게 해체되기 시작했다. 전국모임은 비정규직투쟁이 가장 활성화되던 시기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국민파계열의 비정규직센터나 노힘계열의 철폐연대 등 여러 비정규직단체 중의 하나로 전락해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전국회의 역시 자동차 4사 투쟁, 산별문제 등의 논쟁을 거치며 결속력을 잃고 유명무실해졌으며 개별 현장조직들은 노동조합 장악을 목적으로 선거조직으로 빠져드는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00년 하반기 전국모임은 전국회의에 가입했지만 형식적인 것에 머물렀고 양자의 퇴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정규직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의 두 번째 분리국면 :
비정규직투쟁의 독자적 노조건설운동으로의 전화와 패배

  99년 한라중공업 투쟁을 정점으로 대공장의 구조조정 분쇄투쟁의 불꽃은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구조조정 분쇄투쟁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비정규직과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한라중공업 파업투쟁이 막바지에 치닫고 있던 99년 가을, 재능교육교사노조의 투쟁을 신호탄으로 2000년 초부터 광범위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조건설 투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속에서 비정규직운동은 대중적인 투쟁으로서 두 번째 시기를 맞았다. 2000년 한해만 90개가 넘는 비정규직노조가 건설되었다.
  2000년과 2001년 학습지교사, 시설관리, 보험설계사, 유통·서비스업, 운송·기술직 등 다양한 업종과 다양한 고용형태에서 노조건설투쟁이 벌어졌다. 대개 기존 노동운동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 비제조업체에 속한 이들 노동자들은 대공장과 마찬가지로 90년대 중반 경영합리화·외주화 바람을 타고 대거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IMF를 거치며 임금과 노동조건의 급격한 하락을 겪었다. 99년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회복심리가 뚜렷해지면서 조직된 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으나 노동운동이 취약한 비정규직·중소영세 사업장에서는 대부분의 사업주들이 재계약 과정에서 더욱 악화된 노동조건을 강요했다. 2000년 초에 벌어진 투쟁들은 대개 재계약 과정에서 자본의 무리한 요구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여름이 되자 근로자파견제 실시 2년의 여파로 투쟁 사업장은 더욱 확대되었다. 정부통계로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고용구조의 악화와 전국모임 활동의 성과 위에서 이 투쟁들은 '비정규직' 투쟁이라는 일반성을 띠고 터져나왔다.
  대공장 운동의 침체 속에서 선진 활동가들은 새롭게 떠오른 비정규직투쟁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특히 계급적 기반이 취약했던 비합법 사회주의 그룹들은 특히 더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의 힘은 여전히 취약했고 투쟁에 나선 새로운 노동자층은 주변을 둘러싼 조합주의적 장벽을 뚫고 나가기엔 아직 미성숙했다. 건강하지만 미성숙한 운동에 계급의식을 불어넣고 그 힘을 기존 운동에 대한 혁신으로 밀어붙이는 역할은 전국회의와 전국모임으로 결집된 전투적 현장주의 운동의 임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이미 약화되고 있었다. 전해투, 전국회의의 전투적 활동가들과 전국모임은 비정규직투쟁의 주체를 결집하기 위해 전국비정규직노조협의회를 제안하고 추진했으나 내·외부적 어려움을 뛰어넘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런 주체의 공백 속에서 투쟁의 주도권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연맹의 관료들에게로 넘어갔다.
  정규직 중심으로 편재된 민주노조운동이 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조합주의·관료주의로 경사된 상황에서 등장한 비정규직투쟁은 기존의 노동조합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통신과 캐리어에서 나타난 사태는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로부터 비정규직투쟁은 화석화된 정규직 노동운동 질서에 대당되는 운동으로서의 의미성, 즉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이라는 운동의 의의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계급적으로 각성하지 못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대한 자생적인 불신과 적대감을 가지긴 했지만 그러한 과제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정규직노조에 조력과 지원을 구하긴 했으나 적극적으로 연대와 공동투쟁을 추동할 대상이라고 보지 않았다. 민주노총 관료들은 이러한 의식에 교묘하게 영합해 들어갔다. 그들은 기존 노조질서와 충돌을 기피하며 독자적인 비정규직 노조를 건설하고 이를 안정화시키는 것에 투쟁을 제한했다. 민주노총 관료들의 주도아래 비정규직투쟁은 조합주의적인 틀에 다시 포획되었다. 비정규직운동은 곧 비정규직노동조합운동으로 등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관료들은 비정규직노조의 조직에 있어 여지없이 실패했다. '노조건설   파업투쟁   활동가양성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노조안정화'로 이어지는 민주노총 관료들의 전형적인 노건투 도식은 비정규직투쟁에서 파괴적인 양상으로 나타났다. 한번 투쟁을 시작한 비정규직노조는 어김없이 수 십일에서 수 백일이 넘는 장기투쟁으로 치달았다.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관료들은 투쟁을 접을 근거가 될 '최소의 성과'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열악함과 투쟁의 어려움은 비정규직이라는 처지 자체와 직결되어 있었다. 비정규직투쟁은 대부분 계약해지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거나 시작과 동시에 해지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현장 밖에서 투쟁하는 처지로 몰렸다. 비정규직이 갖고 있는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자본가들은 그것을 최대한 이용했고 노조를 아예 대화상대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정권 초기 합의주의적 제스쳐를 취하던 DJ 정권이 2000년부터 노골적인 노동배제정책으로 돌아선 것도 자본의 비타협적 자세를 부추켰다.  
  이랜드와 같은 특별한 예외를 빼면 대다수의 비정규직노조들은 장기투쟁 속에서 노조 조직마저 남기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은 비정규직투쟁이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투쟁으로 제한될 때 관료들이 원하는 노조의 안정화조차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오직 투쟁의 확대와 낡은 조합주의의 혁파를 통한 전계급적 운동으로의 발전만이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성과'라도 돌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노동조합 질서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 한 민주노총 관료들은 비정규직투쟁이 '정규직운동에 대한' 운동이 되는 것을 온 몸으로 가로막고 비정규직투쟁을 비정규직만의 투쟁으로,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으로 한계지은 끝에 결국 비정규직운동을 파탄으로 몰아갔다. 2000년 말부터 517일간의 극한투쟁을 벌였던 한통계약직노조는 그 때까지 비정규직투쟁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강한 조직력을 보여주었으나 그러한 한계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른 비정규직노조들과 동일한 운명을 걸었다.
  수천명 단위의 대공장급 투쟁을 보여준 한통계약직 투쟁은 그동안 백 단위의 소규모 투쟁 속에서 고만고만한 노조들의 품앗이 투쟁으로 지쳐가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 강력한 구심이자 정세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투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대량해고로부터 투쟁이 촉발하여, 현장에서 밀려나 정규직노조의 배제 속에서 농성·점거·이슈파이팅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전술적 한계에 봉착하면서 초유의 장기투쟁에도 불구하고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은 단지 위로금 몇 푼을 받았을 뿐 노동조합마저 해산되고 말았다. 한통계약직노조의 투쟁은 이동걸 한국통신노조 집행부의 실리주의를 깨부수고 현장조직인 민동회를 혁신하는 투쟁으로 전진해야 했으나, 공공연맹 관료들의 차단과 전술주체들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자생적인 불만을 조직화된 투쟁으로 만들어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한통계약직노조의 해산은 노동조합주의에 머물러서는 비정규직투쟁의 자체적 전망이 없다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정규직·비정규직 운동의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노총 관료들에 의해 노조운동으로 제한된 비정규직투쟁의 한계는 명백했다. 한통계약직노조의 해산으로 그 실패는 누구의 눈에도 자명해졌으며 비정규직투쟁은 그 구심을 잃어버렸다. 2001년 말부터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이 속에서 형식적인 립서비스 외에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이해를 받아 안을 의지도 희망도 없는 대공장 정규직운동은 더욱더 노골적인 실리주의·협조주의로 빠져들어 갔다. 비정규직투쟁의 소강은 전체 계급운동의 퇴조로 이어졌다.
  노조운동으로서 비정규직투쟁의 실패는,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새로운 조직형식이나 정치운동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전국모임의 김기일 씨는 전국모임 해산 평가에서 비정규직투쟁은 앞으로 현장투쟁과 함께 정치운동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상의 『쟁점』이라는 필자는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의 유일한 대안이 지역노조 운동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해방의 투혼』은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화는 일반노조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불안정고용철폐연대'는 비정규직투쟁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틈만 나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 논리들은 투쟁의 전진을 가로막은 진정한 원인인 민주노총 관료들의 노동조합주의와 노동자들의 미성숙한 의식을 은폐함으로써 노동조합주의와의 투쟁을 회피하게 만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운동의 분리를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보호입법 같은 노동조합주의 정치로 빠질 때 이러한 논리는 비정규직문제를 시민사회운동의 영역으로 흡수하려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에 은밀히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비정규직투쟁을 철저히 탄압했던 김대중 정권과 달리 새 정권은 취임 전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언급하며 비정규직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내비쳤다. 그리고 국민파의 거두이며 한노사연과 비정규직센터를 운영하는 김금수 씨를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나 기본권보장을 통해 비정규직문제를 부르주아적 정치·시민사회운동으로 포섭하려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의 열악함을 부각시키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는 조직 노동운동의 특권성을 거론하며 전투적 운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고립시키고 노사정위와 경영참가 등으로 노동운동 내 실리주의 세력의 완전한 체제 내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운동의 분리를 영구화하고 그것을 통해 계급성과 혁명성을 거세하여 노동운동을 부르주아적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재편하는 것을 목적하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특수한 존재양식을 근거로 산별노조, 일반노조, 지역노조와 같은 조직형식을 강조하는 논리 역시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실 투쟁 속에서 이런 논리들은 투쟁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의 근거로 기능했다. 산별노조는 민주노총 관료들에게 비정규직투쟁을 외면하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민주노총 관료들은 일찍이 산별노조가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희망이라고 강변했으나, 실제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이 일어나자 산별 전환이 되면 문제가 풀리니까 그 때까지 기다리라는 논리를 들이대며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았다.
『해방의 투혼』이 주장한 비정규직일반노조 또한 2001년 말 대부분의 비정규직노조들이 장기투쟁으로 지쳐갈 때 투쟁을 접자는 관료들의 이데올로기로서 나타났다. 『해방의 투혼』은 질서정연한 퇴각 이후의 대안으로 "취업자와 실업자의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로부터" "지역별로, 산업별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실업자를 아우르는 조직형태", 즉 비정규직일반노조를 제안했다. "이렇게 포괄적 형식으로 단결한다면 자본의 계약 해지 위협은 상당부분 누그러뜨려질 것이며, 노동조합의 안정성은 배가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안정성을 해치는 원인, 취업자와 실업자의 사이를 넘나드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처지 흔히 고립성·이동성·분산성이라는 비정규직노동자의 특수성은 비정규직이라는 존재자체에서, 고용의 불안정성으로부터 기인한다. 『해방의 투혼』과 민주노총 관료들이 강조하는 "노동조합의 안정화"는 그 불안정성을 철폐하거나, 반대로 그러한 불안정성을 포괄하거나 둘 중 하나로 확보될 수밖에 없다. 즉 기존의 노조질서가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벌여서 그 성과로 노조에 가입시키던가, 아니면 산별노조나 비정규직 일반노조와 같이 조합원 규정이 광범위한 노조형태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을 포괄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고립성·이동성·분산성을 포괄하는 조직, 그것이 의미하는 노동자의 원자성을 인정하는 노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비정규직노조라는 이름의 단체로 결과한다.
  87년 투쟁의 영향으로 중소영세 사업장을 대상으로 많은 지역노조들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대중운동의 후퇴와 함께 이러한 지역노조들은 노동조합이라기 보다는 상근자 중심의 단체적 성격을 띄었고 그 활동 역시 취업알선과 고충처리, 사회여론 운동을 통한 정부압박과 정책대안 제시 등의 활동을 주로 가져 갈 수밖에 없었다.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가 산별노조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포괄되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노동조합주의가 타파되고 하나의 전선에서 투쟁하지 않는다면, 형식적으로 하나의 조직에 속한다 해도 정규직지회는 실리주의적인 교섭단체, 비정규직지회는 시민운동적 단체의 성격을 띄는 것으로 분리될 것이다.
비정규직노동자의 투쟁은 관료들이 만든 비정규직노조질서에 치명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것은 물론 전계급적인 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비정규직만의 투쟁으로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정규직투쟁의 계급적 전진은 노동조합주의가 고착화된 민주노총 질서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를 결코 바라지 않는 관료들이 꿈꾸는 비정규직노조의 안정화란 것은 비정규직보호입법·기본권 확보운동 같은 부르주아적 정치·시민사회 운동과 연결된 투쟁하지 않는 노조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최근 정권과 자본의 태도 변화와 함께 아산과 울산 등 금속 대공장에서 비정규직투쟁의 흐름이 재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이 또다시 조합주의의 틀에 갇혀 정규직 운동질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독자적인 비정규직운동으로 나타난다면 정규직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의 영구분리를 꿈꾸는 자본의 전략은 성공을 거둘 것이다. 비정규직투쟁은 비정규직노동자들'만'이 아닌 비정규직철폐를 향한 전체 계급의 투쟁으로 확대될 때에만 그 전망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비정규직투쟁이 더 이상 자생성과 노동조합주의의 틀 속에 갇혀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의 힘』의 김혜진 씨는 한통계약직 투쟁의 한계로 자생성의 과잉과 의식성의 부재를 지적하며 비정규직투쟁이 노조투쟁을 넘어 정치적으로 진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구조조정 이후 삶의 고통에 못 이겨 투쟁에 나선 수많은 비정규직 동지들을 기억한다. 바로 그 투쟁의 정점에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생적으로 일어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극한의 투쟁을 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이 투쟁을 목적의식적 투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자생성의 한계 속에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는 점 때문이다. 투쟁의 헌신성과 극한성에 매몰되어 이 투쟁을 변화 발전시키지 못하고, 단지 그들에게 내맡겨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통신계약직 노조 투쟁에서 나타난 오류의 근원이자 우리가 힘들게 평가해야 할 지점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올바른 주장이다. 문제는 자생성을 극복할 '목적의식성'의 내용이다.
  신자유주의 정책반대·민중연대전선과 같은 노힘의 소부르주아적 정치는 정치투쟁과 현장을 분리하면서 실제 현장에서는 조합주의에 대한 굴종과 영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99년 한라중공업 투쟁에서 권성원 집행부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으로, 2000년 대우조선에서 하청투쟁을 노조장악의 수단으로 종속시키는 것으로, 2001년 현자에서 투쟁을 철회한 이상욱 집행부에 대한 묵인으로 드러났다.
  노힘은 작년 초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문제를 들어 전국회의를 개별 활동가들에게 개방하여 전국활동가조직으로 재편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 노동조합주의를 타파할 계획없이 조직형식의 재편으로 현재의 분할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민주노총의 산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개별가입을 통해 자조직원들을 전국회의에 밀어 넣고, 현장조직의 노동자들을 자기들의 정치 동원부대로 조직하려는 의도가 뻔한 이 계획은 노동조합 집권을 목적으로 무원칙적인 통합을 통해 몸을 불리고 선거조직화 되고 있는 기층 현장조직의 흐름에 영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집회에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가 같이 참여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정치투쟁, 계급투쟁일 리는 없다.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은 신자유주의 반대와 같은 허구적이고 소부르주아적인 정치전선이 아니라 계급적 단결,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장으로부터 노동자들의 의식을 하나로 만드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정규직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을 단일한 계급투쟁으로 묶어내는 과제는 민노당과 노힘 류의 조합주의적이고 소부르주아적인 정치로 풀릴 수 없다. 생산현장으로부터 분할의식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며 조합주의의 벽을 깨고 계급의식의 전진을 요구한다. 이것은 비정규직투쟁이 분할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생산현장으로 도입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비정규직투쟁을 노동조합주의에 결박되지 않는 의식적이고 계급적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과제, 그것은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면 임무가 되어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계급적 선진노동자들의 전술과제 :
비정규직투쟁의 대공장으로의 도입을 통해
새로운 선진노동자 운동질서를 구축하자!

  민주노총과 연맹, 대공장노조 관료들의 커넥션과 민노당이라는 정치조직을 양날개로 하는 중앙파와 국민파의 '위로부터의 개량주의'는 노동법 개악과 구조조정 공세 속에서 자본과 적대의 최전선에 서있는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을 완전히 무마할 수 없었다. 97년에서 2001년에 이르기까지 구조조정 분쇄투쟁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관료화에 저항하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의 흐름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대공장에서 구조조정 분쇄투쟁을 이끈 현장조직 운동과 2000년부터 폭발한 비정규직노동자의 투쟁이 그것이었다. 혁명적 민중주의 운동의 해체 속에서 9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남한의 비합법 사회주의 써클들은 당연히 이런 전투적 운동과의 결합을 통해 계급적 기반을 마련하려 분투했다. 이것은 비합법 사회주의 그룹의 양 편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선진노동자의 길』과 『해방의 투혼』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대공장 현장조직 운동과 비정규직투쟁에 착목했던 이들 그룹은 그 운동들이 가진 조합주의적 한계와 그로 말미암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운동의 분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운동의 자생적 전투성에 대한 찬양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자생성에 대한 굴종은 그 운동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해체되면서 이들 그룹의 정치적 몰락을 불러오고 있다. 대공장 현장조직 운동에 주목한 『선노길』은 현장조직운동이 노동조합으로부터 독자성을 확보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현장조직이 노동조합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보다 계급적이 되기 위해서는 독자성을 말로 추상적으로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했다.
  비정규직투쟁은 한라중공업과 캐리어에서, 그리고 대우조선에서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명확히 폭로했다. 이러한 비정규직투쟁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안는 것으로서만 현장조직의 조합주의적 한계는 혁신될 수 있었고 그 바운더리가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장조직 운동의 붕괴와 노동조합주의로의 하락 속에서 『선노길』은 전투파 결집 이상의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현실에서 그것은 남아있는 전투적 인자들에 대한 갈라먹기와 끝없는 분화로 결과했다. 이 속에서 『선노길』의 정치는 (오세철 교수가 비판했던 노힘의 노동조합 배후 정치와 똑같이) 전투파 찢어먹기의 배후 정치로 하락했다.
  대공장의 현장조직 운동에 무한정 집착한 『선노길』과 달리 『해방의 투혼』은 2000년 초 일찌감치 대공장 노동운동은 이제 개선의 여지없이 몰락했으며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이야말로 새로운 혁신의 물결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그들은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을 사회주의자들의 전략적 집중지로 규정했으며 그 물결을 밀어 개량주의에 빠져있는 대공장 노동운동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혼』의 주장은 99년 이후 대공장 노동자 투쟁의 침체를 직접적으로 반영했다. 한라중공업 투쟁이 이후 대공장 운동은 급속히 퇴락했으며 98-99년 연이은 패배를 타고 정갑득과 같은 노사협조주의 세력이 대공장운동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 속에서 2000년부터 터져나온 비정규직투쟁의 상대적 건강성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혼』은 노동계급을 대공장 숙련공과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의 단순육체 노동자라는 두 개의 독립적인 계층으로 재단하는 오류에 빠졌다. 이러한 도식화에 근거해서 『투혼』은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운동의 독자적 강화라는 논리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은 민주노총 관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노골적인 노동조합주의로 귀결되었다.
  자본주의 생산의 본원적 경향인 집적과 집중의 결과로써 대공장은 혁명적 사회주의자에게 있어 이행의 거점으로서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다. 맑스나 레닌이 늘 강조했듯 생산의 집적과 집중은 노동자계급 단결의 전제조건이다. 문제는 현재에 있어 '어느 운동이 더 전투적인가'가 아니다. 특정 시기에는 농민이나 학생들의 운동이 더 전투적일 수 있다. 그 때는 농민이나 학생들을 사회주의자들의 전략적 집중지로 규정해야 하는가?
  『투혼』이 더욱 노골적인 조합주의로 하락한 것은 물론 그들이 갖고있던 정치의 문제도 크지만 그들이 기반으로 잡으려 했던 비정규직의 객관적 조건에도 원인이 있다. 대공장에 비해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더욱 원자화되기 쉬운 상태에 처해있으며, 이러한 존재조건으로부터 계급운동이라기보다는 시민운동으로 포섭될 가능성이 크다.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과제는 전투적 자생성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대공장이라는 생산의 거점에 계급적 이해를 불어넣음으로써 운동의 분절성을 넘어 하나로 융합시키는 것이 되었어야 했다.
  정규직운동과 비정규직 운동의 분리는 대공장과 비제조업의 분리이기도 하다. 노동유연화는 대공장과 비제조업에서 이중적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운송과 같은 비제조업에서 그것은 소부르주아적 계층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노동자들을 전투화시키고 노동운동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대공장에서는 반대로 노동자들의 단일성을 해체시키고 있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절성을 배경으로 형성된 대공장의 현장 합의구조는 정규직노동자들의 실리주의적 의식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노힘의 정치적 전선이나 『투혼』과 반대로 대공장 속으로 비정규직투쟁을 도입해야 하며 노동조합질서를 뛰어넘어 대공장을 중심으로 생산계열로 편재되어있는 사내하청 뿐 아니라 외주노동자들까지 단결시킴으로써 대공장 운동을 계급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공장을 혁명운동의 관제고지로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으로 이끌리며 원자화 되고있는 비정규직운동을 끌어당겨야 한다. 현재 대공장은 계급분절 의식의 가장 강력한 고리를 이루고 있으며, 대공장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중소영세·비제조업에서의 비정규직운동과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가장 강력한 고리가 끊겨 나갈 때 비로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을 넘는 전계급적 투쟁이 터져나갈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이것은 해체된 선진노동자 운동의 재구축이라는 과제와 직결되어 있다. 현대중공업의 한 활동가는 현중에 전투파는 없다고 말하며 보다 의식적인 운동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현대중공업에 언제 전투파라는 이름으로 현장조직이 다시 탄생될지 모르겠다. 만약 그러한 조직이 탄생된다면 그 조직은 이제 분명한 노사협조주의 반대를 천명하고, 현장권력 쟁취라는 말의 정치적 성격을 나름대로 명쾌히 이해하는 사람들의 조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조직의 성격은 정확히 노자간의 흐름, 노사협조적인 흐름에 파열구를 내는 실천,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선도적으로 실천하는 조직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제는 더 이상 어설픈 전투파의 흉내, 비 실천적인 정책적 행보라는 것이 공고화된 관료적 흐름의 현장조직 질서와 한편 너무나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현장 대중들의 상태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올바른 주장이다. 그러나 현장조직 운동이 타락에 따라 끝없는 나눠먹기와 찢어먹기로 나타난 구태의연한 전투파 결집으로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  
  이것은 비정규직투쟁을 대공장으로 도입함으로써 구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전투적 활동가들은 비정규직노동자와 정규직노동자의 공동이해에 기반한 공동투쟁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공통의 이해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립적인 것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울산에서 비정규직투쟁을 선도했던 INP 사내하청노조의 김형기 위원장은 이러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의 모범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대규모 사업장에서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동자를 감싸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렇다면 어째서 '비정규직 철폐'에 대한 수많은 구호들이 현실 앞에서 힘을 못쓰고 마는가? 왜 노동자 사이의 연대가 이토록 당위로만 멈추고 있는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통의 이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일하는 곳은 같다. 하지만 이 사실을 빼고는 이 둘 사이에 같은 것은 없다. 임금, 노동조건의 차이는 아주 극심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서로 다른 계급, 신분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이런 극심한 차이는 이들을 동일한 이해로 묶는데 아주 큰 장애물이다. ……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이 구조조정에 맞선 공동투쟁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의식적 단결이 있어야 한다."
  김형기 위원장의 말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가진 이해의 차이는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비정규직투쟁을 현장에 도입한다는 것은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서 계급의 이해를 받아안도록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은 아직도 전투파의 가면을 쓰고 있는 기존 현장조직 운동의 조합주의를 폭로하고 보다 의식적인 운동의 맹아를 창출하는 매개가 될 것이다. 노조장악을 위한 이합집산을 넘어 공동투쟁을 새로운 차원에서 제기함으로서 노동조합주의가 고착화된 기존의 운동질서를 과감히 혁파하고 보다 계급적인 새로운 운동질서의 창출로 나아가야 한다.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에서 나타나는 전술적 혼란들

  2001년 이후 대중투쟁은 뚜렷히 하락하고 있다. 새로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사회적 합의주의의 실재화를 통해 더욱 강화된 노동운동 내 실리주의 세력의 제도권 편입을 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두산중공업과 화물연대 투쟁에서 나타난 것처럼 투쟁이 벌어지더라도 정부와 자본·민주노총 관료들의 야합에 의해 빠르게 중재되고 무마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선진노동자운동의 붕괴에 따른 전투적 구심의 상실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이런 현실은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로 하여금 더 이상 투쟁 자체를 전투적으로 미는 것에만 머무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자본과 정권이 추구하는 노동운동의 시민운동으로 흡수에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을 극복하고 단일한 계급운동으로 융합시켜내는 것이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의 과제로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공장으로부터 분절성의 고리를 끊고 그것을 다시 혁명적 노동계급운동의 관제고지로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대공장에 계급의식적 운동질서를 재구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될 선진노동자들을 결집시켜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시기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선진노동자의 가장 중요한 당면 임무로 제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들은 아직 이러한 과제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정규직운동 따로 비정규직운동 따로' 사고하는 의식의 한계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에 있어 전술적 혼란으로 반영되고 있다.
  '전투파 결집'이라는 구호는 이제 낡은 것이 되었으며 오히려 대공장 운동질서의 계급적인 재편이 비정규직투쟁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는 과제라는 것에 대한 몰이해로 나타나고 있다. 전투파에 대한 집착은 이제 천연기념물처럼 희귀하게 남은 전투적 인자들이 혹시라도 더 유실될까 급급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이 갖고있는 노동조합주의적 의식의 한계를 혁파하고 보다 의식적이고 정치적으로 재조직화하는 과제를 기피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극단적인 형태는 최근 모 대공장 사업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기존의 현장조직에서 분리된 소수의 전투적 선진노동자들을 더 엄격한 규율과 학습으로 묶어놓으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는 사회주의자들의 정치를 현존하는 전투파의 의식으로 하락시키고 노동자 모임을 자 써클의 학습단위로 만드는 종파주의일 뿐이다.
  이 같은 인식적 한계는 정규직운동을 노동조합주의적 한계 속에 가두고 있으며, 비정규직 '운동'을 그와 다른 별개의 영역으로 설정하는 부문주의로 빠뜨리고 있다. 비정규직투쟁을 전체운동 속에서가 아니라 비정규직노동자 만의 문제로 사고하는 것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아직 의식이 낮고 개별화가 심하기 때문에 끈질긴 노력으로 신뢰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현장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하여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을 당면의 과제에서 기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에 따른 극심한 이동성은 '끈질긴 노력'과 '뿌리내리기'를 헛수고로 만들고 있다. 하청노동자로 현장에 취업, 주변 노동자와 열심히 술 먹고 친해지기, 천신만고 끝에 좀 얘기가 통하는 노동자가 생길라치면 다른 업체로 이전, 성과 유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웃지 못할 현상이 반복적으로 연출되고 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비정규직 주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현장활동을 대단히 장기적인 준비기로 설정하게 강제하고 있다.『투혼』의 어법에 따르자면 비정규직운동에도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과 같은 '역사적 준비단계'가 필요하다.
  구조조정 분쇄투쟁을 거치며 남한의 선진노동자 운동은 노동조합주의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붕괴했으며 그것은 이미 혁명적 사회주의 써클들의 정치적 퇴행으로 반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과제로 부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투혼』이 이야기하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까지 민중주의 운동 내에서도 미래를 위해 현재의 역량을 보존·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투쟁회피론과 준비도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투쟁우위론의 대립이 존재했다. 투쟁회피론은 무림과 NL을 거쳐 오늘날 국민파로 이어지고 있으며, 투쟁우위론을 주장했던 NPD와 같은 혁명적 민중주의는 전투적 현장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가 그로부터 자라나는 태반이 되었다. 그러나 전투파의 신화에 매혹되어 노동자투쟁 그 자체에 매몰됐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경제주의적 수공업성은 현장 속으로, 뿌리내리기와 같은 인민주의적 발상으로 빠져들면서 "결정적 투쟁 이전에 주체를 단련시키야 하며 그 전에는 어떠한 투쟁도 해서는 안된다"는 과거 무림이나 NL과 똑같은 투쟁회피주의적인 현장투신론으로 뒷걸음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추수로는 결코 현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주체를 형성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주체의 단련과 결집, 새로운 운동질서의 형성은 학습과 규율, 현장노동자들과 술 먹고 친해지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의식적 투쟁 속에서 창출될 때만 그 경계선이 명확해지고 보다 굳게 형성될 수 있다. 현시기 혁명적 사회주의자에게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 비정규직투쟁을 대공장에 도입함으로써 형성될 새로운 선진노동자 운동질서는 과거의 현장조직 운동보다 더 계급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노사협조주의와 조합주의가 판치는 대공장 현실에서 사회주의로 끌려올 수밖에 없는 선진노동자 운동의 재편성을 불러올 것이다. 이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 건설 투쟁이 본격화될 수 있는 기초를 형성할 것이다.
  따라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을 통해 대공장 운동질서 전반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계급적인 의미에서 제기하고 이를 통해 적지만 유의미한 소수를 결집시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적 질서인 세포운동과 결합시키는 것이라는 전술적 목표를 명확히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투쟁은 비정규직노동자만의 투쟁이라는 부분주의적 인식은 비정규직투쟁을 정규직운동에 대한 의식적인 투쟁으로써 발전시키는 과제를 외면하고 비정규직운동의 독자적 강화라는 논리로 귀결된다. 비정규직투쟁을 통한 대공장 운동질서의 재편이라는 객관적인 운동의 요구가 아니라 비정규직투쟁을 비정규직노동자의 주체적 조건으로부터 사고하는 이런 논리들은 사회주의자의 실천을 노동조합주의적인 활동으로 하락시킬 뿐이다.
  정권과 자본이 비정규직문제에 보이고 있는 태도의 변화는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에 있어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권의 무차별한 탄압에 의해 눌려있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으나 최근 대공장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산별건설 흐름은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이 정권과 자본의 의도대로 부르주아적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포섭될 가능성을 높게 만들고 있다.
  5월 초 최초로 산별중앙교섭에 성공한 금속노조는 여세를 몰아 6월 대공장 임단투와 맞물려 대대적인 산별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현대·기아차, 쌍용자동차, 현중, 미포, 대우조선 등 아직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았던 대공장 중 상당수가 올해 말에는 금속노조 지부나 지회로 조직전환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산별전환의 형태는 정규직노동자들은 대기업지부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금속노조의 지역지부로 조직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른 두 개의 노조로 조직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비정규직운동이 정규직운동에 대한 개입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차단될 것이며 자본과 민주노총 관료들이 꿈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운동의 분리는 제도적으로 완성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아산과 울산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투쟁 역시 산별노조와 무관할 수 없다. 2000년과 2001년의 비정규직투쟁은 자본의 극심한 탄압으로 인해 노동조합 투쟁으로 최대치의 전투성을 띄었지만, 지금 같은 산별전환의 대세 속에서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의 대중적 흐름은 그것으로 포섭될 여지가 많다.    
  이런 상황은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이 더욱 의식적일 것을 강제하고 있다.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은 지난 시기의 분절되어 진행되어 두 운동으로서 형성된 경험을 교훈으로 삼고 주체를 융합시키기 위한 사회주의자와 전투적 선진노동자들의 목적의식적인 투쟁이 없다면 노동조합적 차원에서 아무리 성과가 있다해도 과거와 같은 정규직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의 분리로 나타날 것이며 이는 과거의 답습에 불과하다. 문제의 핵심은 이 운동을 노동조합적 차원을 넘어 의식적인 운동으로 전진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중운동의 성과는 모두 산별노조로 귀결될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투쟁이 정규직으로부터 출발하느냐 비정규직노동자로부터 출발하느냐는 어디까지나 현장의 구체적 상황에 달려 있을 뿐이며 독자노조냐 투쟁체냐 하는 조직형식을 둘러싼 논쟁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산별이 본격화되기 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산별의 허구적 실체를 폭로하면서 현장에서 최대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의 체계를 형성해 놓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산별의 흐름이 본격화된다 해도 정규직운동질서에 개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운동이 아닌 계급투쟁으로
대공장 운동의 혁명적 전진으로!

  남한의 비정규직운동은 97-99년 전국모임 운동으로 대변되는 형성기와 2000년과 2001년 수도권 비제조업을 중심으로 터져나온 대중투쟁의 시기를 지나 한통계약직 이후 소강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 전 과정을 통해 비정규직운동은 정규직운동과 독자적인 운동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되었으며 이것은 노동운동 전반에 조합주의·실리주의를 강화시키는 기초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남한 비정규직운동의 역사는 이러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운동의 분리를 만들고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운동을 지배하고 있는 노동조합주의 의식이라는 족쇄이며, 그 분리를 넘어 노동자운동이 계급투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투쟁이 그 족쇄를 깨부수는 의식적인 투쟁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투쟁은 현재와 같은 전투적 선진노동자 운동의 붕괴와 노동조합주의로의 타락 속에서 그것을 보다 계급적인 질서로 재형성하는 과제와 맞물려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의 승패 여하에 따라 현재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대공장에서의 비정규직투쟁이 계급적 운동으로 발전하느냐 아니면 자본과 국민파가 획책하는 바와 같이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포섭되느냐의 향방이 판가름될 것이다.
  정규직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의 분리를 극복하고 그것을 기초로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이 당 운동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전투파 운동에 기생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운동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의식적 투쟁을 통해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고 대공장에 확고한 사회주의자의 진지가 구축될 때, 후퇴의 기간은 줄어들 것이며 대중투쟁의 다음 고양기에 계급 속에 굳게 결합한 혁명정당을 건설할 최소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이제 대공장 비정규직투쟁은 과거의 오류와 한계를 딛고 독자적 운동으로서의 비정규직운동이 아니라 계급투쟁으로, 대공장운동의 혁명적 전진으로 발전해야 한다.

과거를 청산하자. 더 이상 비정규직운동이 아니라 계급투쟁으로!
대공장을 혁명운동의 관제고지로!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들이 이 투쟁의 깃발을 들자!

2003. 6. 23. 노동자권력을 향한 전진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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