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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발전을 위한 모색 - 사회진보연대의 입장?

현장연대 2003.11.29 17:06 조회 수 : 1020 추천:46

노동운동 발전을 위한 모색



1/ 들어가며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한 과제, 이를 정식화하는 일은 매우 힘겹고도 어렵다. 이 글이 과제와 방침을 제출하는 것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 매우 통렬히 한탄하지만, 운동의 발전이 테제를 정식화하고 선언하는 것으로 해결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하나의 위안을 삼고자 한다. 이 글은 아직은 미력하지만, 운동이 처한 조건과 양태, 이것의 역사적 원인에 대해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향후 과제와 방침을 정식하기 위해 몇 가지 거친 문제제기를 던지고 있다. 먼저, 노동운동이 처한 현실적 조건,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몇 가지 특질과 이로 인해 나타난 한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는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자본의 위기관리의 핵심 전략이 어떠한 양상으로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노동자 계급(내적) 구성의 이질화와, 계급적 단결을 구조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 발전 전망을 둘러싼 제 경향과 흐름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어떠한 한계와 성과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이 과연 발전의 전망이 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향후 우리의 적극적 실천과 투쟁 속에서 증명해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 글은 전반적으로 1) 노동운동이 처한 현실이 노동자 계급 구성의 이질화를 부추기는 자본의 재편의 원인이자 결과, 즉 구조적 조건에 기인한다는 점을, 2) 운동의 발전이 대중적 주체 형성과 이를 위한 대중 투쟁 전선 강화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을, 3) 노동자 계급 내적․외적 통일을 위한 정치적 통일의 최소 지점(정치적 이니셔티브의 확립)을 창출해야 하고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서술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2/ 노동운동의 현실 조건과 한국 사회의 특질

1. 노동조합 운동 그리고 노동운동

노동조합은 사실 자본주의 사회의 체제 내적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생산자․인격적 생산자’로서 노동자를 규정하는 데서 출발한다기보다, 오히려 ‘자본에게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파는 판매자’로서 노동자를 규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쟁취, 노동조건 개선 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에 맞서는 주요한 투쟁이면서도, 이 투쟁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인정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그 존재 자체와 투쟁의 과정에서, 자본과 노동 간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대립 전선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질서에 굴복하여 노동자들의 삶을 무작정 맡기지 않겠다는 저항의 출발점이며,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 의식은 변화․발전하게 된다. 더욱이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투쟁은 노동자들의 개별적 의식을 집단적인 것으로 전화시키는 주요한 조건이 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민중을 가장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대중적 조직 질서이며, 자본과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일상적’인 투쟁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이다. 만약 노동조합이 교섭과 합의 그 자체에 매몰되어 있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조합주의적․실리적 요구에 집착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결과의 여부를 떠나 노동자들의 보편적 생존의 요구는 결코 풀릴 수 없다. 교섭과 합의의 결과는 언제나 한시적이자 한계적이며, 그 단맛이 지속될 수 있는 물적 토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이 경과해야 할지라도 투쟁의 주체는 다시금 투쟁의 궁극적 목표를 향해 내달릴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 있다. 이러한 과정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는 반복적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을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계급 운동으로 끌어갈 수 있는 핵심적 투쟁 기관으로, 계급투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유력한 조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조직의 형식적 측면을 본다면, 기업별이냐 산업별이냐의 문제는 그 사회가 처한 축적의 조건, 이에 따른 조직화의 차별적 경로의 결과이다. 즉, 기업별․산업별 조직 형태는 그 사회의 자본 축적의 정도와 이에 따른 제도의 문제이며, 이 역시 투쟁의 발전 과정, 그리고 결과 혹은 성과를 반영하게 된다. 길드와 숙련 노동자 중심으로 시작된 서구 유럽의 노동조합 운동은 산업별 체계로 시작할 수 있었던 물적 토대 하에서 시작했고, 그 경로에 따라 노동조합 운동이 발전해 나갔다. 그러나 제 3세계 혹은 종속적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에는 급속한 산업화․자본화로 인해 노동조합 운동 자체가 발전할 수 있는 시간적․물적 토대가 매우 취약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사회는 자연스럽게 기업별 노조로의 조직화 경로를 밟아 왔고, 산별 노조로의 전환을 항상적인 과제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즉각적 산별 건설이냐 아니냐, 소산별이냐 대산별이냐의 치열했던 논쟁을 돌아보더라도 산별노조 건설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어 왔다. 더욱이 최근 들어 기업별 노조 체계가 가져온 병폐와 생채기는 이미 숨길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조직 형식의 문제는 한 사회의 시간적․공간적 축적의 조건에 종속된 변수라는 점에서 그 자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특히 자본의 만성적 위기가 심화되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폭력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의 조건이다. 그러기에 노동에 대한 자본과 지배권력의 통제와 관리 전략이 어떻게 전개․관철되고 있는가를 판단해야 하며, 이 속에서 노동 운동의 대응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최근 노동 운동에서 실리적 조합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현상은 자본과 지배권력의 관리․통제 전략의 결과이자, 이에 대해 적확히 대응하지 못한 노동(조합) 운동의 존재 조건과 함께 하면서 운동적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간 분할, 상층 역량과 대중과의 분리 등을 통해 노동운동의 계급적 발전을 저해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의 일반적 전략이다. 특히 노동의 불안정화가 확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의 활동 범위는 넓어진다.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상․하층 노동자들 간 차별을 심화하여 노동자 계급 내 구성을 이질화시켜내며, 대공장․중소영세 사업장과 산업별 간 노동조합의 존재조건을 차등화시켜 낸다. 또한 구조조정의 시기와 방법을 순차화시켜 집중된 투쟁을 방해하고, 끊임없이 제도와 합법의 영역에 노동조합의 투쟁을 묶어놓고자 기도한다. 이러한 자본의 전략에 지난 수십 년 간 노동(조합) 운동은 무기력했다. 이것은 산업별, 기업별 형식을 불문한다. 서구 산별 노조를 돌아보면 교섭과 합의구조를 안정화하여 해당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했던 측면이 존재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체제내화를 피하긴 어려웠다. 더욱이 노동의 불안정화의 경향이 일자리 자체의 축소와 비정규직화를 통해 관철되어 나가는 현실적 조건에서 노동조합이라는 다수 대중의 조직은 오히려 소수자의 조직으로 전락하게 되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이것은 자본의 통제․관리 전략의 전화에 대항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운동의 질적․구조적 전화를 적극적으로 사고해야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조직 자체만으로 본다면 노동운동의 일부이지만-  대중운동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 여전히 관건적 조직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이 실리적 요구 투쟁에 매몰될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존재하지만, 이것의 극복 역시도 대중적 발전 공간을 방기한 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2. 한국사회 노동운동에 대한 간략한 고찰

한국사회는 식민지, 한국전쟁과 분단을 경험하면서 미․일 제국주의의 수탈에 종속되어 급속한 자본축적을 경험했다. 파쇼적 군사정권은 개발 독재․성장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정치적 측면에서 대중을 동원해내었고, 이 속에서 국가 중심의 자본 축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더욱이 반공주의와 반북주의, 레드 콤플렉스 등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적 통제는 한국사회의 이념적 편향과 분절을 심화시켜 왔다. 끊임없이 근로라는 단어가 노동을 대체했고, 해방의 열망은 금기시 되었다.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위한 투쟁조차 멸공의 이름 하에 박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반파쇼 민주화’ 쟁취 투쟁은 대중적․전국적․정치적 투쟁으로 발전해 나갔다. 또한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 변혁을 둘러싼 사상적 논쟁이 심도 깊게 전개되었고, 이로써 한국사회의 구조적․계급적 모순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즉 대중적 투쟁 전선의 고양, 투쟁 주체의 확장은 ‘반파쇼 민주화’ 투쟁이라는 일반 민주주의 확장 투쟁을 사회 변혁적․계급적 투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주요한 거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과 주체 형성이 두드러진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는 열악한 생존의 조건에 시달리는 다수 노동자들의 존재 조건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 존재 조건을 창출하는 노-자 간 모순에 대한 인식의 확장 -주체의 확장-을 의미한다. 나아가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운동 공간을 통해 계급 투쟁이 전개될 수 있는 틀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물론 투쟁 전선이 정치적․전국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대중운동의 공간과 영역은 전반적으로 확장되었다. 학생 운동만이 아니라 농민․빈민․여성 등 대중운동 영역에서 급속히 주체가 확립되었고, 자체적으로 전국적 운동의 질서를 갖추어나가게 되었다. 이로써 80년대 후반의 투쟁 전선은 대중조직․대중주체 간 연대와 연합질서의 창출 -전선운동적 경향- 로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고, 사회운동․정치운동의 주체들 역시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양상을 이루었다 할 것이다. 여기서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자.

70-80년대 중소․영세 사업장에서의 극악한 노동조건과 착취에 맞서 분출했던 생존권 쟁취 투쟁은 ‘반파쇼 민주화’ 투쟁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개별 기업이라는 틀을 넘어 사회적․정치적 투쟁으로 발전해 나갔다. 87년 민중항쟁으로 ‘반파쇼 민주화’ 투쟁은 정점에 이르렀으며, 곧 이은 7․8․9 노동자 대투쟁, 88년 노동악법 개정 투쟁 등을 통해 노동(조합) 운동이 대중적 주체로 급속히 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이 다시금 ‘반파쇼 민주화’라는 전국적․정치적 투쟁 전선을 대중적으로 강화시켜 나가는 과정이었다 할 것이다. 또한 ‘민주노조 건설․사수, 나아가 노동해방’이라는 정치적 이니셔티브는 노동자 계급(내적)의 단결과 연대를 가능하게 했다. 대공장이건 중소영세 사업장이건,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남성․여성 노동자를 불문하고 ‘반파쇼 민주화’, ‘민주노조 쟁취․노동해방’의 구호 아래 단결하고 결집해 나갔다. 이것은 아래로부터 지도력을 형성하고 이것을 관철할 수 있는 투쟁의 호조건을 창출해 내었다. 88년 들어, 대다수 독점재벌과 그룹들에서 노동조합 건설 흐름이 분출하였고, 노동조합 운동은 대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의 힘과 파괴력이라는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 투쟁은 성과를 남길 수 있었으며, 이로써 노동조합 운동의 일반화를 이끌어내었던 것이다. 90년 1월 전노협의 건설은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노동조합 운동에서 전국적 지도부가 창출됨으로 인해 투쟁의 전선은 대중운동․대중조직 중심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이 대중조직 중심의 투쟁 전선은 노동(조합) 운동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그러나 대공장과 업종회의 등이 전노협 건설의 주체로 결합하지 못했었다는 역사의 한 단면에서, 우리는 노동조합 운동이 대공장 중심주의․업종별 이기주의․기업별(정규직) 배타주의 등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를 이미 배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노동자계급 (내적) 구성의 이질화와 분열을 통해 자본은 노동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완성해 간다는 점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여하간 한국사회 노동(조합) 운동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특징과 이로 인해 드러난 한계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도록 하자.

첫째, 한국사회 변혁운동은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노동조합의 투쟁 내용과 요구 자체가 ‘정치적’ 투쟁이자, 대중적 투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열악한 생존의 조건, 파쇼적 국가권력의 지배와 날이 선 폭력 속에서 반파쇼 민주화 투쟁은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투쟁 요구였다.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조합을 통한 대중적 투쟁 -노조 건설․사수에서 임단투에 이르기까지- 을 통해 핵심적 투쟁 주체로 부상하게 되었다. 노동조합의 투쟁이 개별 사업장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투쟁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정치적․전국적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존재했다. 이것은 종속적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체적으로 드러나는 경향인데, 노동조합의 투쟁이 조합주의적인 것을 넘어 그 자체로 정치적인 투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정치적 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개별 노동조합에서 전국적 지도부 건설에 이르기까지 노동조합의 민주화와 사수 등 합법성 여부를 둘러싼 투쟁이 생존권 투쟁과 직결되며, 나아가 국가권력의 민주화 혹은 전복을 둘러싼 투쟁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또한 열악한 삶의 조건, 억압적 사회 분위기 등은 국가권력과 자본에 대한 골 깊은 분노를 형성한다. 투쟁은 매우 정치적이며 전투적인 양상으로 드러나며, 광범위한 대중적 합의와 공감대 하에 투쟁 전선의 고양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임금과 단체협상을 둘러싼 투쟁, 민주노조 건설 혹은 사수를 위한 투쟁이 그 자체로 정치적 투쟁이 될 수 있었으며, 전 민중적 투쟁으로 결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위 전노협 정신은 바로 ‘국가권력의 민주화와 노동해방’이라는 정치적 투쟁 전선의 내용과 의지를 의미했다. 노동자들은 전노협을 중심으로 노동자 계급 내적으로나, 대중적․전국적으로나 통일된 투쟁 전선의 주체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노동(조합) 운동은 개별 기업 차원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투쟁을 넘어서는 전망을 확립하지 못한 채 계속적으로 ‘조합주의’적 운동에 머물렀으며, 이것이 현실적 위기의 주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 자본주의 축적의 객관적 조건 아래 기업별 노동조합 운동이 일반화되었고, 대공장 노동조합의 전투성을 통해 반독점․반자본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급속하게 투쟁 주체가 형성․조직․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기업별 조직이 가지는 투쟁의 응집력, 요구안 통일의 용이성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속에서 한국사회의 ‘전투적 조합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다. 저항의 주체에게 있어 이 전투성은 -폭력적이냐 아니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전투성은 1) 국가권력과 파쇼적 탄압에 대한 즉자적․생리적 분노에서 출발하여, 2) 지배권력과 자본에 대한 본질적․계급적 분노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저항으로 표출될 수 있다. 나아가 3) 투쟁의 요구에 대한 관철의 ‘의지’와 ‘힘’이 동반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힘으로 전화하는 것이다. 즉 지배세력과의 타협과 협상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투쟁 요구의 관철을 위해서 투쟁의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 단결과 연대에 기초한 대중적 투쟁 역량이 발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사회의 ‘전투적 조합주의는’ 대중 운동의 정치적․전국적 발전이라는 조건과 투쟁 주체의 의식적 강화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앙 중심적․대공장 중심의 조직 구조가 고착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정신은 급속히 흔들리게 된다. 전노협의 기반이 되었던 지역운동의 결집은 기업별 체계가 안정화되는 과정과 상반되게 침체와 소멸의 길을 걷게 되었고, 중소․영세 사업장에 - 매우 차별적으로- 집중되는 탄압과 조직 질서 내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이 거듭 반복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투쟁력을 아래로부터 무너뜨리게 된다. 동시에 (계급적․전국적) 지도력의 형성과 관철 모두를 힘겹게 만드는 구조를 양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 노동조합 운동의 구조적 특징이 운동의 급속한 성장의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체와 해체 나아가 위기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기업별이라는 조직 형식의 문제에 모든 원인을,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기업별 체계를 극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형식적 전화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또한 개별 사업장 투쟁 요구안을 양적으로 묶고, 시기를 집중하여 투쟁을 하자는 것으로도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 조직을 확대하고, 투쟁 요구안을 키우고, 시기를 맞추는 투쟁 -사실 이 조차 제대로 된 적이 없기에- 은 매우 소중할 것이나, 오히려 이것이 더 불가능할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할 것이다. 노동자 계급 구성이 변화하고 내적 이질화가 심화되는 조건에서, 더욱이 이를 통해 자본의 통제전략이 관철되는 조건에서 계급적 단결은 조직의 크기를 확대하고 투쟁의 내용을 합산하는 것으로 돌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 구성의 이질화를 극복할 수 있는 조직 양태와 투쟁의 내용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질적․구조적 전환을 위한 고통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승리로 나아갈 수 없다.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유할 수 있는 투쟁의 주제를 찾거나 비정규직의 ‘보호’를 위해 투쟁하자는 주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적이다. 불안정 노동의 경향을 해체할 수 있는 투쟁의 내용와 형식을 통해 투쟁의 주체 자체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반파쇼 민주화’라는 전국적 정치 투쟁의 전선이 해체된 이후,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정치적 내용으로 결합할 수 있는 고리가 부재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노동조합 운동은 조직 내적 투쟁을 외적․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스스로 결합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전국적 정치 전선이 복구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이 60만을 넘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미조직된 노동자들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다. 더욱이 불안정 노동의 확산은 비정규직 뿐 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의 전반적 조건을 현격히 저하시키고 있다. 노동(조합) 운동의 질적․구조적 전화, 정치적 투쟁 전선의 복구를 통해서만이 위기 극복의 단초를 찾아질 수 있다.

셋째, 대중 운동의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성장 -주체의 형성과 전선의 확장- 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이념의 해체와 사상적 혼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현존했던 사회주의의 몰락은 한국사회 내 이념적 공황을 불러 일으켰고, 상당 기간 이론적․실천적 측면의 혼란이 거듭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90년대 초반 들어 계속적인 정당운동의 실패, 전국적 차원에서 사회운동․정치운동 세력들의 분화와 몰락, 국가권력의 탄압에 의한 계급 대중 운동의 유린 등이 이어졌고, 급속하게 운동의 주체가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노동조합 운동이 일반화되었고, 농민․빈민 등 계급 대중 운동이 전국적 규모의 조직을 갖추는 등 대중운동이 객관적으로 확장되는 현상과는 상반되는 경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은 무엇보다 이념의 해체와 사상적 전환에 기인한다. 한국사회 변혁적 전망에 대한 회의와 불신은 한 편에서는 변혁 운동 진영의 쇠락으로 이어졌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선거 혁명, 평화적 이행, 자본주의와 함께 하는 사회주의, 민주적 시장경제’ 등등의 이름을 빌어 자본주의 내적, 체제 내적 운동의 강화의 길로 나아갔다. 소위 시민운동의 성장은 이러한 경향의 결과이며, 자본과 권력 역시도 시민운동의 강화에 적극 협력하면서 운동의 체제내화와 변혁운동 진영의 고립․분산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대중운동이 활성화되고, 운동의 질서가 대중운동 중심으로 재편해나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편식과 대중추수적 경향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 계급 운동의 주도성 이라는 테제는 운동 주체들이 급속히 노동조합 운동으로 조직과 역량을 투여하도록 이끌었으며, 노동조합 운동이 일반화․활성화하는 과정에서 대중운동 질서는 노동조합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편의 과정에 사상적 혼란 및 전환의 경향, 운동 주체의 쇠락이라는 정세적 조건이 결합하였다. 나아가 사회운동․정치운동의 발전이 함께 하지 못하면서 대중운동 자체의 변혁적 강화의 방향이 앞서나갔다기보다, 대중추수적 방향으로 쉽게 경도된 측면이 없지 않다.
또한 전국적 전선운동 조직 건설의 흐름이 반미․통일 등 민족 모순에 집중하는 것으로 귀결됨으로 인해 전선운동의 공간은 개별 단체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결국 대중운동의 강화와 발전이라는 물적 토대는 대중운동의 변혁적 강화, 대중운동 간 연합적 질서의 강화를 통한 전선운동의 강화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넷째, 결국 현재의 투쟁 지형은 한 측면에서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기대로, 또 다른 측면에서 노동조합 운동 자체의 내용적 과소화로 귀결되었다. 이 양자는 현재 지도력 구축의 문제에서 매우 심각하게 충돌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결의하고 조직하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투쟁이 무력해지고 소원해진다, 어떻게든 노동조합을 끼워 넣고 대공장이 결합해야만 투쟁의 그림이 그려진다, 어느 사이 노동조합 운동을 조직하고 이것에 내용을 불어넣는 것만이 최선책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앞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대중운동 발전의 편식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사회운동․정치운동과 대중운동 간 결합력의 한계, 나아가 대중운동 주체의 불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노동조합 내적으로 본다면 대중과의 결합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빚기도 한다. 이것은 개별 노동조합의 경우 심각하게 드러나게 된다.
노동조합의 경우, 개별 사업장 조합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직접적 요구안이 아니고서는 대중 투쟁을 끌어내기 어려운 조건에 처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내적 분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 노동조합의 실리적 요구가 앞서게 되며, 이러한 조건에 긴박 당하게 되면서 과정에서 자본의 전략이 관철되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동(조합)의 상층과 대중의 분리, 노동조합 간 분할 등이 맞물리면서 노동조합의 실리주의․조합주의적 경향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전체 운동 지형이 노동조합에 요구하는 것․노동조합이 요구받고 있는 것과 노동조합의 내적 상황은 더욱 더 괴리되어 온 과정이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대중) 운동의 지도력은 형성될 수 없으며 관철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이 왜곡된 것으로 제출되고 진행됨으로 인해 이 위기는 증폭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적 투쟁을 노동조합에서 분화시켜 조합 운동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식의 정치운동․정당운동의 방향이라던가, 전투적 조합주의가 대중투쟁의 왜곡을 낳았다는 근거로 제출된 사회개혁 투쟁이나 사회적 노조주의, 이미 몰락한 사민주의적 전망을 한국사회에 무리하에 이식하여 합리적 구조개혁 등을 주장하는 흐름 등이 그것이다.

다섯 째, 그러나 우리는 대중적 투쟁의 공간이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주체가 확장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착목해야 한다.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이 노동자 계급 내적 구성력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계급적 연대를 위한 현실의 조건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구조조정의 전면성과 총체성은 투쟁의 공간과 주체를 확장시켜내고 있다. 국가기간산업 사유화와 해외매각, 의료와 교육, 연기금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본주의적․시장주의적 재편은 이를 둘러싼 투쟁이 대중적 투쟁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바 있다. 고립․분산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각급 투쟁 간 연관고리 역시 강화되고 있다. 최근 불안정 노동 철폐를 위해 비정규․장애․이주․여성 주체들의 공동투쟁 전선을 이루었으며, 민중복지를 위한 계급 대중 주체들의 결합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을 소수자 투쟁으로 보거나, 부문적 이해관계로 바라보는 경향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바로 이러한 경향이 운동의 질적․구조적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투쟁에 주목하고, 이 투쟁을 전체 전선으로 끌어올리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더욱이 개별 사업장의 임단투와 고용안정,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전개되고 있는 투쟁에 대해 돌아보자. 개별 사업장의 힘으로, 연맹이나 총연맹의 지원으로 투쟁의 전개는 가능하겠지만, 그 성과는 미약하거나 부재하다. 최근 들어 임금을 인상하고, 고용보장을 약속 받고, 복지를 개선하는 등 투쟁의 성과가 그리 없지 않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동강도 강화․노동조건 악화를 인정한 임금의 인상, 비정규직․외주하청 혹은 분사화를 용인하는 선에서의 고용보장, 주가가 올라 선심 쓰듯 내어 준 복지의 개선, 이것이 투쟁 성과의 실내용이다. 이러한 양보교섭, 노동의 불안정화를 묵인하는 선에서의 합의로 당장의 투쟁은 마무리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갈 수는 없다. 개별 사업장의 현안 -그것이 성과로 나아갔건 아니건 간에- 을 넘어 적극적으로 투쟁 전선을 확장하지 않고서 개별 사업장의 투쟁, 그것에 얽매인 투쟁 요구안은 지금 관철되었다 하더라도 바로 내일 휴지조각이 되어버릴 수 있다.
나아가 금융적 세계화의 확장과 종속적 편입의 심화는 계급 투쟁 지형을 더욱 예각화시켜 나가고 있다.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공기업화’ 주장은 타협의 여지없는 -자본의 조건 자체가 그러하다- 구조조정의 현실에서 노동자 투쟁이 나아갈 수밖에 없는 하나의 길을 보여주었다.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투쟁은 개별 기업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의 보장이 국가권력과의 전면 대결을 통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다는, 현실 투쟁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불안정 노동 철폐 투쟁에 대해 여전히도 철폐의 불가능성을 들어 ‘보호’라는 논리에 갇혀 있고자 한다면, 그 ‘보호주의’에 갇혀 있는 온정주의자는 얼마 안가 이미 불안정 노동층에 편입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에 필연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주체 -이념적 동의로써가 아니라- 는 확장되고 있으며, 투쟁의 요구안은 좀더 근원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은 매우 지난할 것이지만, 패배적․청산적 관점을 과감히 폐기하는 것, 단기적 이해관계의 허무함에 대해 시급히 인정하는 것, 이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3/ 자본의 위기와 노동․삶의 불안정화

1.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의 불안정화

세계화․개방화․자유화․금융화의 기치를 내세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과 삶의 불안정화 경향은 경제 위기 이후의 신생아가 아니다.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심화되어 온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 즉 자본의 축적에 있어서의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인플레의 확대, 국가 재정의 만성적 적자누적 등은 자본이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게 한 것이다. 결국, 생산력의 과잉이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개별 자본간 경쟁의 격화는 그 경쟁력의 핵심에 노동비용의 감소와 노동의 유연화를 필요충분 조건으로 놓게 된다. 더욱이 생산적인 부문에서 이윤을 남기지 못해 항상적으로 부휴하는 과잉자본․금융자본의 급속한 성장은 세계화의 경향과 맞물리면서 급속하게 투기적 금융자본으로 전화하게 되었다. 이미 종속적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사회에 있어 금융자본의 확장은 치명적이며 치명적인 불안정성을 확대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매력적인 투자의 유인을 제공하는 길만이 단기적이나마 주가를 올리고, 주식시장을 안정시키는 유일한 방안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최대한의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한 기업-금융 구조개편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노동의 불안정화 즉, 노동비용의 삭감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전면화를 의미한다. 김대중 정권은 취임 후 1년 6개월 동안 5개 시중은행에 대한 퇴출명령, 비은행 금융기관 79개에 대한 인가취소․영업정지, 55개 기업에 대한 퇴출명령 등 ‘비상시국’을 방불케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러한 ‘수량적’ 구조조정 뒤에는 곧바로 저금리,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한 주식시장 부양정책이 잇따랐다. 그 결과 98년 4/4분기부터 경제지표상의 회복이 나타났고 사회적으로 위기극복 낙관론이 일기도 했지만, 위기의 구조적 심화는 강화되었다. 독점재벌과 금융기관의 수익률의 일정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고도성장의 전망은 불투명했으며, 경제구조의 대외종속성 및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되었다. 99년 7월경부터 전면화 된 ‘대우사태’는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을 광범위하게 증폭시켰으며, ‘제2의 외환위기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정권의 정책선택의 폭을 결정적으로 축소되었다. 외견상으로나마 회복되었던 경제지표마저도 추락했는 과정에서 현 정권은 ‘2단계 구조조정 완성’을 기치로 공기업 사유화, 대우차 등의 해외매각, 금융권 구조조정에 집착했고, 이것은 위기적 정세를 더욱 부추기게 되었다. 결국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재벌중심의 시장 독점은 오히려 강화되었고, 소유와 경영의 선진화․투명화라는 미명 아래 주식과 금융시장은 더욱 투기적 형태로 재편되었다. 결국, 국가․국유 은행 중심을 자본․시장 중심의 구조로 재편하기 위한 금융 구조조정으로 인해 초국적 자본의 직접적 지배와 금융자본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나아가 투자와 철수를 손쉽게 만드는 이 구조는 고용관계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덜어주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중공업 등 주요 산업과 공공부문은 매각가치를 높이고 투자의 유인을 제공하며, 투자의 요인을 형성한다는 원칙 하에 철저히 재편을 종속받고 있다.

한편, 이 모든 과정에 유순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이 전제되어 있다.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결과로 80년대 후반 이래로 확산된 비정규직은 고용형태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독점자본에 수직적으로 계열화되어 있는 다수의 하청 노동, 외주․아웃소싱 등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부추겨온 다양한 기재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파쇼적․반민주적 군사정권의 폭력적 지배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전선은 전투적 노동운동의 발전으로 연결되어 왔다. 이러한 정서와 운동적 경향은 여전히 노동운동 안에 존재한다. 자본과 지배권력은 ‘시위 문화로 얼룩진’ 한국사회 노동운동을 자본의 재편과 초국적 자본의 진출, 투자의 유인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목하며, 평생직장의 개념을 해체하고 정착되어 있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깨뜨리는데 주목했다. 노동자들을 더욱 분할하고 노동자간 경쟁을 부추겨 통제와 관리의 새로운 맥을 형성해야 했다. 이처럼 노동자들간 집합적 정서를 경쟁적․개인적인 것으로 전화시키며 이를 통해 노동시장을 최대한 유연화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핵심적 목표이다. 사실 노동시장 유연화는 임금과 노동비용을 감소시키는 직접적인 것으로만은 한계적이다. 노동강도와 노동조건,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전 관계를 재편해야 한다. 이것을 통해 노동시장을 질적․양적, 수량적․기능적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전화시켜내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노동자 계급의 구성을 이질화시켜내고 분할과 경쟁을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자본과 지배권력은 자본의 위기를 관리하고 있으며 또한 노동운동의 분할과 해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2.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의 전면화와 노동운동의 대응

개별 기업 차원에서의 노동의 불안정화는 이미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자본은 임금․노동시간체계의 변동과 함께 이른바 ‘비정규직’을 체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의 ‘신경영전략’은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조직노동자들의 저항을 억누르고 개별 노동자들을 자본의 조직체계에 몰입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특히 이 시기 여성노동자들은 자본의 수요 확대에 따라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었고, 이를 통해 자본의 노동력 관리․통제 전략의 안전판으로서 비정규직의 틀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업내 정규직-기업내 비정규직-외주화된 불안정노동자 혹은 중소영세사업체의 노동자’라는 노동자 내부의 분화가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기업별 임금격차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 문제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것은 정규직 노동자가 핵심노동력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노동조합 운동의 일반화 경향에서 대공장 노동조합이 여타의 노동운동의 전선을 쳐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노동대중의 생존권을 폭력적으로 박탈하는 과정이었다. 96-97년 노동법개정은 1980년대 말이래 자본이 구축해왔던 대노동 전략, 즉 정리해고 등의 고용조정,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임금 및 노동시간의 탄력화, 현장통제의 강화, 노동3권의 제한 등을 법제화하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97년 외환위기를 통해 결정적 힘을 발휘하게 되었고, 98년을 넘어서면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 경향은 지배적 구조조정의 내용이 되었다. 결국 90년대 중반 이후 확대된 인원삭감과 96-98년에 걸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의 제도화가 맞물리면서 노동운동의 저지선은 돌파당하고 말았다. 사실 90년대 중반 이후 대기업에서는 정규직-신규채용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자연감원 된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대체되어 왔다. 90년대 말 이후 경기 회복되었던 산업에서도 총 고용의 규모는 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을 통해 충원해 나갔던 것이다. 이처럼 생산량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필요인원의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신기술도입의 효과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이 노동강도 강화를 자발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90년대 중반 이후 정리해고제로 대표되는 고용불안을 경험하고 이에 대한 집단적 방어에 실패한 이후,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일상적 전환배치에 순응하게 되었으며, 일시적인 생산확대 국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잔업이나 물량확보에 집착하는 등 ‘돈 벌기’에 치중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신들의 고용유지의 안전판으로, 노동강도 강화의 완충제로 사고하는 경향이 노골화되고 있다. 하청계열화의 양상도 변화하고 있는데 이전의 수직적․단선적 하청계열화를 탈피하여 하청의 연결고리가 분산화․중층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또 원청의 생산량 변동에 따라 인원조정을 용이하게 하도록 하청업체를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노동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거의 모든 업종에서 외주화가 전면화 되었다. 비정규직이 기업의 기간 노동력을 구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정규직이 ‘기간 노동력’을 구성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정규직-핵심업무․비정규직-주변업무 또는 부수적 업무라는 인식이 이미 허구적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숙련이 높다는 일반의 인식 역시 허구적이다. 대형장치산업으로 고숙련 노동을 요구했던 화학섬유산업의 경우를 보면, 이른바 핵심업무에까지 전면적으로 비정규직이 배치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기간 노동력화 -즉, 정규직 일자리의 비정규직화- 는 여러 경로를 통해 진행되어 왔다. 97년 경제위기를 통해 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받아들이는 과정, 명예퇴직․희망퇴직 이후 소사장제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그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노동과정과 노동조직 자체를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모듈화를 통해 조립공정 자체가 외주화 되며, 조선산업의 경우 물량도급 방식으로 핵심부분까지 용역화가 진척되고 있다. 공공부문은 사업부제 도입, 분사화를 통해 노동의 불안정화가 대단히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규직․조직노동자들의 반발이 존재했지만,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전환배치나 정규직이 기피하는 업무에 비정규직을 투입하는 방식이 관철되었다. 또 분사의 경우는 정규직에게 일정기간의 고용안정을 보장해 주는 대가로 비정규직 도입을 강요하게 된다. 한편 정규직․비정규직 혼용작업을 통해 점차로 비정규직 비중을 높여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의 불안정화는 노동자 대중 전반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정규직의 고용을 위협하는 것이면서도 그 효과의 측면에서 불균등할 뿐 아니라, 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의 경우 불안정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일시적인 노동조건 개선을 얻어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 내부의 분절화와 양극화를 가속화시켜 결국 노동자 계급 구성을 변화시키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3.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키는 다양한 기제

1) 상시 구조조정 체제

IMF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도입으로 상징되었던 정규직의 축소와 ‘비정규직화’는 특히 수량적 측면에서 대폭적인 인원조정에 대한 사회적 저항감을 무력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여기에 더하여 아웃소싱․외주․분사․도급화 등등을 통한 이른바 ‘상시적 구조조정’이 광범위하게 관철되고 있다. 애초 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했던 정리해고가, 2단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의경쟁력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바뀌었다. 나아가 수익이 개선된 기업들에서도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핵심에 주력한다는 논리 아래 고용관계를 급속하게 간접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는 초국적 금융자본 지배 하의 경제의 불안정성에 대응하여 독점자본의 위험을 중소자본 및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일 뿐 아니라,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와 간접 고용 된 노동자들에 대한 비용 삭감 등의 방식으로 착취와 지배를 극대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최근 구조조정 과정에서 강조되고 있는 ‘상시적 구조조정체제’란 경제지표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노동에 대한 공격은 지속될 것이며 ‘고용없는 성장’이 전면화되고 있음을 일컫는 것이다.

2) 노동의 분절화를 통한 강제

상시구조조정 체제를 통한 ‘조직적 유연화’의 결과로 대자본에 종속된 중소․영세․하청 업체의 수를 늘리고 중소․영세․하청 업체간 경쟁을 강화한다. 이에 따라 종속적인 지위에 놓여 있는 중소․영세․하청 사업장 노동자들은 다시 저임금과 심각한 노동강도 강화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의 노동에 대한 통제력이 어느 때보다도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항상적인 고용불안은 계약갱신․비갱신의 이름으로 순종적이고 개별적인 노동자를 요구한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대자본이 법적으로는 고용의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대항하기에도 어려운 조건이다. 이처럼 ‘노동력의 유연화’는 직접적으로 고용불안을 낳으면서도, 일정기간 내 고용계약이 갱신될 것이냐 아니냐 하는 항상적인 생존의 위협에 개별 노동자들을 노출시키게 된다. 이 위협적 조건이 노동강도 강화, 저임금을 결국 수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분절화는 더욱 심화된다. 업종간․지역간, 정규직․비정규직, 대공장․중소/영세/하청, 남성․여성간 분할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로써 노동자들에 대한 분할․통치 전략은 손쉽게 관철된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 간 간극은 단결을 가로막고, 이들간의 허구적 간극은 구조조정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작용하게 한다.

3) 금융화로의 포섭

금융화를 통해 중간계급 및 노동계급 일부를 포섭하는 전략을 통해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동의 불안정화를 용인하는 구조로 나아갔다. 1998년 이후 본격화된 코스닥 시장은 이른바 정보통신 벤처 기업의 재원조달기구로 작동하였다. 게다가 기존 은행의 경우도 2000년 들어 1조원 이상의 자금을 주식 시장에 투자했는데, 이는 은행대출자금을 초과하는 액수였다. 즉, 은행이 고유한 기능을 상실하면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금융화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금융적 팽창과 세계수준에 걸맞는 투기적 감각과 상징-조작능력을 보유한 소수의 억만장자 계급인 골드칼라ꡑ를 탄생시켰고 금융화 속에서 일시적 성공을 거둔 금리생활자를 양성하고 350만명에 달하는 개미군단을 양산하였다. 성공한 이들에게는 세계적 수준의 소비가 제공되었고, 영어와 달러의 사용에 적합한 정체성들을 형성시켰다. 게다가 국민국가 차원에서도 이들은 성공한 국민으로써 주요한 정치적 세력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주식시장을 통해 불투명한 미래의 가치에 기대를 걸게 함으로써 다수의 중간계급을 금융화에 동참시켜 나아갔다. 또한, 노동대중의 일부를 우리사주나 종업원 지주제 혹은 스톡옵션을 확대하여 금융화에 전략적으로 포섭하였다. 동시에 이러한 금융적 수혜계층은 정규직으로 최소화시켰으며, 비정규직의 확산 등 불안정 노동의 확대에 노동자들 스스로가 동참하도록 하였다.

4) 노동불안정화의 기제로서 생산적 복지

김대중 정권은 ‘생산적 복지’를 노동정책의 기조로서 강조하고 있다. ‘평생고용에서 평생직업으로’라는 허울좋은 구호 아래 고용파괴와 노동조건의 악화가 강요되면서도 노동자 삶의 위기는 노동자 개인의 능력과 책임 탓으로 돌려진다. 소위 ‘생산적 복지’는 불안정한 노동이라도 수용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방식으로 열악한 노동을 강제한다. 최소한의 생계마저 보장하지 않는 복지급여수준, 3D업종을 비롯한 불안정한 일자리를 거부하였을 때는 실업급여를 중단하겠다는 방침 등은 불안정한 노동을 강제하고 유인하려는 생산적 복지정책의 목표를 드러내주는 것이다.


4/ 노동운동 발전 전망에 대한 입장과 간평

1. 실리적 조합주의의 다양한 면모

노동조합은 그 본성에 있어 실리주의와 경제주의를 내재하는 조직이다. 그러기에 노동조합이 실리적 경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판단은 단순히 지도부가 개량화 되었다는 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지도부의 성향 여부도 대중적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앞서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이 노동자 계급 구성을 이질화시켜내고 이로써 노동자간 분할과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실리적 조합주의 경향은 매우 당연한 현실의 조건인가? 우리는 실리적 조합주의가 노동(조합) 운동이 처한 구조적 위기를 돌파하기보다 오히려 그 현실에 천착하여 발전의 방향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망이 운동의 구조적 위기를 심화시켜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것은 노동운동 내 몇 가지의 입장 혹은 관점을 통해 제기되기도 하고, 이를 통해 하나의 세력으로 정착되기도 한다. 또한 개별 사업장의 한계와 조건을 들어 소시기의 판단과 행보를 합리화하거나, 정세적 조건 -경제위기 국면, 월드컵 기간 파업 불가 등- 을 들어 투쟁 불가 혹은 회피의 결과로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상당히 다양한 양상과 주장으로 드러나지만, 결국 조합주의와 실리주의에 기반하며, 대중추수적 -사실은 대중적 상황을 빌미로- 경향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통합적 경향이자, 세력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대략 1) 사회적 합의, 참여적 노사관계 등 노-자 관계의 전환, 2) 교섭력을 강화하고 대중적 동원이 용이한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적 전환 3)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유력한 기재로의 선거정당 강화, 4) 노동조합 운동의 명분과 합리성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시민운동․사회운동과의 연대 등을 주장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약간은 거칠게 살펴보았으나, 이러한 주장이 현실적 운동에서 상당히 교차하고 있으며,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97년 경제 위기 국면에서 자본과 지배권력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구조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것은 구조조정의 폐해가 가져오는 사회적 저항을 희석시키고 합리화시키기 위한 자본의 의도였고, 이를 통해 노동조합 상층 혹은 일부를 견인하기 위한 적극적 방책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 운동 ‘내’에서 오히려 ‘사회적 조합주의’․‘참여적 조합주의’가 적극 주창되었고, 이를 수용하자는 주장이 일었다.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패배주의에 젖어 있는 상황에서 이 주장은 상대적으로 힘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97년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정리해고 수용과 이것이 가져오는 직접적 폐해를 경험한 이후 노사정위원회 혹은 합의구조에 대한 강한 주장은 수그러들었고, 대중적 차원에서도 힘을 얻기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또 다른 모습으로 지속되고 있다.
일례를 들어 산별 전환의 문제 의식 속에는 대중을 좀 더 많이 쉽게 동원하여 교섭의 힘을 키우자는 주장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물론 산별 전환, 교섭력의 확대는 노동조합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교섭력과 교섭의 정치력은 양적 확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섭의 힘, 투쟁의 성과는 대중적 투쟁을 통해 가능하다. 투쟁의 대중성은 조직을 확대하면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내용을 통해서 대중성을 획득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또한 노동자 대중은 생존권 쟁취 투쟁으로 가감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내용과 조건 속에서만 움직인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에 연연하고, 투쟁의 명분에 집착하게 되면 투쟁의 주체는 투쟁으로 나서게 되는 경로를 잃어버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대중적 투쟁은 불가능하게 되어, 교섭은 양보를 통해 마무리되거나,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무력화되거나, 주체의 소진으로 인해 성과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세력화의 의미는 매우 흥미롭게 해석된다. 사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슬로건은 지난 몇 번의 대선을 통해 형성되었다. 특히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대중적 전선운동에서 보수야당과의 연합, 소부르주아지와의 연합적 질서였던 전선운동은 투쟁의 결과를 그들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귀결되었다. 이로써 보수야당, 소부르주아지와의 절연, 주체적․대중적․계급적 운동 발전을 위해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방향이 제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정치세력화는 - 사실 매 시기 대선이라는 정세 조건에 의해 언급되었기에- 그 방법과 경로에서 1) 선거를 통한 합법적 정치공간에 대한 진출 -혹여 선거 혁명까지 이야기된 적도 있다- 2) 합법적 정치공간에 대한 유력한 기재로의 합법(전술) 정당 등이 주요한 흐름으로 정착되었다. 더욱이 노동조합 운동의 입장에서 합법적 정당운동의 공간으로 진출하여, 노동운동의 사회적 입지를 강화하고, 교섭력․정치력을 높일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쉽게 결합하게 된다. (일단 합법적 정치 공간의 진출의 의미와 선거 대응의 의미, 그리고 이에 대한 판단 여부는 5강의 주체에서 다룰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자기 합리화, 교섭력과 정치력 향상에 기인하여 정치운동 혹은 정당운동을 설정하는 것은 1) 조합운동과 정치운동을 무리하게 분리하여 노동조합의 조합주의와 경제주의를 부추길 가능성을 높이며, 2) 조합주의와 경제주의에 갇힌 노동조합․노동자 대중운동은 활성화의 계기를 스스로 차단하게 되며, 3) 오히려 득표와 선거 전술에 매몰되는 정치․정당 운동으로 인해 대중운동의 요구와 투쟁의 내용까지도 그 수위를 ‘현격히 낮추는’ 결과로 나아가기 쉽다.
노동조합이 사회적 명분을 획득하고, 합리성을 추구하여 사회적 세력으로 정착하기 위한 시도는 정당이나 정치운동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힘있는 시민운동의 지지를 받고, 이들과의 결합을 통해 사회적 명분을 획득하고자 시도한다. 물론 시민운동․사회운동과의 적극적 결합, 시민 운동적․사회 운동적 내용이 노동조합의 투쟁 요구와 결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노동조합의 투쟁 주체가 각급 대중투쟁의 주체와 밀접하게 결합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상층 간 연대, 지원과 지지에 그치는 연대, 투쟁의 명분 쌓기 식 연대는 한계적이다. 나아가 시민운동 진영의 다수가 오히려 구조조정을 수용하고, 노동자의 투쟁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적 조건에서, ‘연대의 강화’는 이들을 설득하고 견인하는 양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설득․견인 당하는 양상으로 나아갈 위험성이 다분하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며, 부정의 결과는 또 다른 편향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실리와 이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주체의 열망만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서구 유럽의 사민주의적 경향은 자본 축적의 구조적 토대에 기반 했고, 이 역시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 나아가 현실 자본주의의 개량의 물적 토대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대다수 노동자․민중이 불안정한 노동과 실업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은 노동에 대한 적극적 포섭이라기보다 오히려 ‘적극적 배제’를 통해서만이 자본의 위기를 지연시켜 나갈 수 있는 축적 구조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실리주의적 이해 관계의 여부를 따져 본다면, 극히 일부의 정규직․상층 노동자들이나, 계절적․시기적 차원에서 일부 산업의 내적 조건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역시 매우 불안정하다. 결국 실리의 내용은 미래의 고용에 대한 ‘한시적 약속’이며, 현재의 일자리를 근근히 유지하는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이 여전히 개별 사업장 차원의 요구로 전개되고, 정규직 노동자․조직된 노동자들이 단기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있으며, 노동조합이 구조적으로 불안정․비정규 노동자들의 요구안을 받아 안을 수 없는, 받아 않지 않는 조건이 지속되고 있음으로 인해 이 위기의 극복은 점점 요원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노동조합의 투쟁 -개별사업장이건 아니건- 은 그 자체로 경제 투쟁의 성격을 띠면서도 끊임없이 정치 투쟁으로 전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와 같이 개별 사업장의 고용안정과 일자리 지키기 투쟁조차도 개별 사업장 내의 투쟁의 격화로는 결코 풀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조합과 대중적 영역의 투쟁을 정치화시키는 것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며, 오히려 정치적 운동은 노동자 대중 투쟁의 강화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2. 현장의 강화, 현장운동 활성화의 의미와 현실 조건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에서 현장의 강화․현장 투쟁의 활성화․현장 조직 운동의 발전이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시도 없다. 그렇다면 현장의 강화, 현장 투쟁 활성화가 어떠한 의미이고,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현장 강화는 현장 활동가 풀의 확장, 노동자 계급 의식의 확장, 주체의 강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의 일환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 운동이 매우 급속히 정착되면서, 조직 내적으로 볼 때 이념적․사상적 느슨함이 존재했고, 조직 구조 자체의 이완성을 피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대중 운동 내․외적으로 운동 주체가 지속적으로 쇠락하는 과정에서, 주체 간 -조합운동 내․외의- 관계 형성의 경로와 방식이 매우 불투명하거나 불안정하거나, 일방적 지원의 형태로 맺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동조합 내․외적으로 활동가 층의 확장과 결합을 위한 시도는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으며, 현장 강화는 이것의 주요한 경로였다.
둘째, 노동조합에서 일상활동을 강화해나가고, 현장 활동의 전형을 창출함으로써 대중적 투쟁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이다. 사실 노동조합의 역사를 보면 직장위원회, 공장평의회 등 현장 활동 강화를 위한 다양한 조직 운동이 전개되어 왔다. 한국사회의 경우, 분회나 소모임 이외의 현장 모임은 별반 존재하지 않으며, 이 조차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거나 밀도 있게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자본의 통제에 맞서는 일상적 투쟁, 학습․교육․토론을 활성화할 수 있는 단위가 필요하다. 현장을 강화하기 위한 주체의 결집과 계획으로 이러한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현장 ‘조직’ 운동은 1) 노동조합의 민주화, 2) 어용 노조의 반정립이라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등장했거나, 이 자체에 집중하고 있음으로 인해 일상적 투쟁을 전개하고 선도할 수 있는 질서를 창출해오지 못했다 할 수 있다.
셋째,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운동이 내적 강화를 넘어 전체 변혁 운동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현장 활동가와 현장 조직, 현장 투쟁의 활성화는 매우 중요한 주체이며, 과제이다. 노동조합은 현안에 대한 대응에 쉽게 매몰되며, 이 자체로도 버거울 수 있는 조직이다. 그러기에 조합 내적 시야와 관점을 끊임없이 확장하기 위한 주체의 계획은 반드시 필요하며, 노동조합을 넘나드는 활동과 실천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현장 ‘조직’ 운동이 조합 운동의 틀, 기업별 사안을 넘어서지 못해 왔다.

사실 그 동안 무수한 현장 조직 운동이 전개되어 왔고, 현장 내에서의 치열한 투쟁이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을 이끌어온 것이 사실이다. 현장의 강화는 노동조합의 항상적 슬로건이기도 하지만, 대다수 현장 조직 운동과 현장 활동가의 핵심적 과제였다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구조와 조건과 오히려 밀접하게 결부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현장의 강화는 개별 기업별 체계 하에서 전개되며, 이 틀을 넘는 실천과 운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조직 형태와 활동 범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물론 현장의 틀을 넘어서는 전국적 조직을 구축하고, 새로운 조직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이 역시 현장 조직 간 연대, 활동가 간 결합, 투쟁 내용의 병렬적 합산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현장 운동의 틀을 제기하는 흐름의 경우에도 오히려 대중적 거점을 가지지 못함으로 인해 대중과 유리된 투쟁을 전개하거나, 투쟁의 과제를 이식 혹은 강변하는 식의 활동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다수의 현장 운동은 노동조합의 장악과 집행부의 교체에 활동이 집중되어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활동가 층이 확장되고, 투쟁의 주체가 형성된다. 그러나 이를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일상활동과 정치적 활동이 전개되지 않는다면, 이 역시 개별 기업 현장 내의 활동으로 귀결된다. 노동조합 집행부를 장악했다면 현장 활동은 노동조합 활동을 보완하는 역할에 매몰되며, 이 조차도 지도와 활동의 구심이 분화되면서 오히려 갈등과 분열이 증폭되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노조 민주화 투쟁을 중심으로 묶인 현장 활동의 대다수에서 나타나는 양상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운동의 위기 극복을 위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현장 조직 운동이 부상하면서 현장 조직의 형성, 강화를 위한 부단한 움직임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투쟁의 전투성, 투쟁 내용의 계급성을 견지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이완된 현장 투쟁을 집중적으로 활성화시켜내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생존권 투쟁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공부문의 사유화 저지 투쟁과 생존권 쟁취 투쟁을 대립적인 것으로 바라본다거나,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을 생존권 투쟁과 유리된 투쟁으로 바라본다거나, 나아가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생존권 쟁취 투쟁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현장에서의 생존권 투쟁은 그 자체로 격렬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변혁적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운동적 위기는 현장 내에 갇히는 생존권 투쟁 -전투적이건 아니건, 변혁 지향적이건 아니건- 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오히려 노동자 대중이 자신의 생존권과 직접적․현상적으로 연결된 투쟁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흐름은 전투적이고 변혁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기업별 노동조합주의를 극복할 수 없으며, 생존권 투쟁의 수량적 합산으로 투쟁이 발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대중적 상황에 종속되어 활동하는 조합주의적 성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장의 강화, 현장 활동의 강화를 통해 투쟁 주체를 확장하고, 자본에 대항하는 일상적 투쟁을 조직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투쟁의 주체가 어떠한 시야를 확보할 것인가, 나아가 노동조합 운동의 대중적 활성화가 어떻게 가능한가, 이를 통해 투쟁의 전국적․정치적 전선을 어떻게 확장하고 결합의 장을 만들어나갈 것인가의 고민이 부재하다면, 현장의 강화는 기업별 노동조합의 ‘조합주의’적 경향에 갇혀 좌-우 편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3. 전선운동의 강화와 대중 주체 형성

전선운동 강화와 대중운동 활성화를 위한 모색은 한국사회 운동의 역사에서 지속되어 왔다 할 것이다. 현 시기 수십, 수백 개에 이르는 공투위․투본․범대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혹자는 ‘자발적 지원’에 머무는 이러한 투쟁의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공동투쟁을 위한 주체적 계획 없이 전개되는 흐름에 대해 부정하기도 한다. 사실 각각의 투쟁 단위의 양태는 매우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투쟁에 대한 지원 이상을 넘어갈 수도 없으며, 이 지원 역시 매우 한계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투쟁의 외연을 넓히고, 투쟁의 주체를 확장하고, 투쟁 내용의 사회성․정치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점에서 투쟁 ‘전선’을 확장하고, ‘대중적’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매우 한계적이지만, 현실적 조건 하에 지협적이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확장을 위한 제 시도에 대해 좀더 간략히 살펴보자.

80년대 중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84년 민민협과 국민회의, 85년 민통련, 87년 국본 등이 만들어 졌다. 이러한 전선 운동적 경향은 한국사회와 자본축적에 대한 이해, 변혁전망과 주체 형성에 대한 상이한 판단에도 불구하고 ‘반파쇼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통일전선 운동의 맹아로 기억된다. 그러나 1) 보수야당과의 연합이라는 조건에서 주체의 역할과 의미를 분명히 하지 못했고, 2) 대중운동의 주체적 역량이 아직은 취약했다는 조건에서, 3) 나아가 운동 주체 간 정세적 판단의 차이와 투쟁 내용의 차이가 결국 한국사회와 변혁 전망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차이에 기인했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부표해 왔던 과정이었다 할 것이다. 88년 들어 민통련․국본․새로운 민중운동연합 건설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가 건설되었다. 이는 노동운동연합을 전제로 민중운동연합을 구성해야 한다는 광범위한 인식에 기반한다. 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건설되었으나, 대중적 투쟁과 결합하지 못한 채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90년에는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민자당일당독재분쇄와민중기본권쟁취국민연합(국민연합)이라는 한시적 공동 투쟁체가 출범하였다. 국민연합은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대중적 이해와 요구에 근거한 투쟁을 확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그 동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오히려 대중조직의 상황이 이에 부응하지 못했다. 대중조직은 끊임없이 자신이 처한 조건 -대중의 상태와 조건-을 근거로 역량을 투여하지 못했고, 자신의 이해와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한국사회 전선운동 활성화, 공동 투쟁체 건설을 위한 시도는 이념의 문제, 대중운동 활성화를 위한 자기 계획의 부재, 나아가 각급 대중운동 스스로 전국적 투쟁 지도부 구축을 위한 전략적 포진의 관점이 부재하면서 발전해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96-97년 총파업에의 공동대응, 최근 발전파업 과정에서의 전국적 결집은 공동투쟁 전선의 발전 가능성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민중연대는 상설적 공동 투쟁체 건설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물론 간략히 짚어보았던 역사의 오류를 여전히 되풀이할 가능성은 여전히 농후하다. 이것을 극복하기 이해서는 무엇보다도 대중운동 단위가 조직 ‘내적’ 여건을 넘어 전국적 지도력, 전국적인 공동투쟁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자기 극복의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대중조직의 경우 -특히 민주노총의 경우- 민중연대나 공동투쟁 단위를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자발적 지원 세력’ 이상으로 여기지 않으며, 성명서를 내주고 명망가의 기자회견 정도를 해주는 조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조직 내 투쟁의 이해와 필요, 시기와 여건에 따라 역량을 투여할 뿐이다. 물론 이것을 대중운동 단위 주체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공동투쟁의 각급 주체들의 여건 역시 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이에 만족하거나 자족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운동․사회운동 단위는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정책적 지원․몸 대주기에 오히려 익숙한 활동을 벌여왔기도 하다.

대중 투쟁의 활성화와 이것의 교류, 연대의 폭을 확장하기 위한 투쟁 전선의 확장, 연대의 강화는 투쟁의 양과 수를 늘리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전국적․정치적 투쟁 활성화, 전략적 지도부의 구축, 이를 위한 대중운동․정치사회 운동의 정치적 포진이다. 대중운동과 사회운동․정치운동이 전국적 공동투쟁, 투쟁 전선의 확장과 활성화, 이를 통해 지도력을 형성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한 공동의․평등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물론 대중조직 간, 대중조직과 여타의 운동 단위 간, 조건과 상황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을 들어, 이것에 매몰된다면, 각개 고립․분산하는 투쟁의 양상은 결코 극복될 수 없다. 그러기에 대중투쟁의 활성화와 투쟁 전선의 확장과 이를 위한 질서의 구축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조합 운동의 ‘조합주의’적 편향을 극복하는 주요한 경로이다. 노동조합 운동이 사회적 투쟁과 결합하고 정치적 투쟁을 강화하는 것은 단선적인 연대나 몇 번의 투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내적 요구와 투쟁을 끊임없이 사회적 관계, 민중적 요구 속에서 재정립해야 한다. 나아가 이미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미 확장되어 있는 투쟁의 공간과 질서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편입시켜나가야 한다. 또한 각급 투쟁의 조직 간 연대가 상층의 연대를 넘어 투쟁 주체들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지역 거점이나 투쟁의 공간을 중심으로 지속적․일상적 연대를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 등 대중운동은 자신의 필요와 이해에 따라 전술적으로 결합하는 양상을 극복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히려 스스로를 전국적 투쟁의 지도부를 자임하고, 대중운동 간 연대의 주체로 나섬으로써 대중운동 주체를 아래로부터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사안별․시기별 연대를 극복하고, 지역적 거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역적 운동 양상을 보면, 노동조합 운동이 지역의 중소․영세사업장과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나서 싸우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생활적 요구 투쟁으로까지 시야를 확대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질적 조건에 처해 있는 노동자․민중들의 공통의 요구를 만들고 이를 통해 결합해나가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투쟁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더욱 전격적인 기획력과 투쟁의 배치가 필요하다. 결국 대중운동 단위는 투쟁 전선 확장을 위해 시기적․전술적 결합을 극복하고 전략적 연대, 나아가 전략적 지도력 구축을 위해 적극 포진하기 위한 자기 계획을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의 주요한 경로로 지역적 대중운동 활성화를 위해 복무해야 하며, 이 공통의 거점을 통해 보편적 투쟁의 요구와 일상적 결합을 이루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5/ 글을 마치며

자본과 정권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법적․정책적․제도적․이데올로기적 공세를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다. 계속적인 노동악법 개정, 임금제도와 노동조건 재편을 통한 노동강도의 강화, 노동시장의 개별화와 경쟁 강화를 통해 계속적인 불안정화를 시도할 것이다. 바로 지금 그나마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재의 실리적 요구에 아무리 집착한들 그 단맛은 오래 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동안 노동의 불안정화 저지,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 마치 비정규직에 대한 시혜적 투쟁으로 여겨진 것은 명백한 운동적 오류이다. 정규직․조직된 노동자들이 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자 계급 구성의 이질화의 제 경향에 맞선 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여기지 않는 한 이 경향은 거침없이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노동의 비정규직화와 무한한 실업의 나락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노동조합 운동의 단결과 연대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게 된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미 정규직 노동자 수를 압도하고 있는 조건에서 이들에 대한 조직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의 기업별 체계로의 조직은 매우 힘들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합원이 되기도 힘들며, 설령 조합원이 되더라도 이 투쟁을 노동조합이 받아 안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이 실리주의적 경향을 강화하면서 더욱 심화된다. 더욱이 비정규직 노동자 내적으로 보더라도 매우 이질적 존재조건을 가지고 있다. 최근 들어 초기업단위 노동조합, 지역(일반) 노조 건설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하간 정규직․비정규직을 불문하고 사업장과 업종을 넘는 계급적 단결의 정신을 복원하는 것, 개별 사업장 투쟁을 넘어서 생활적․지역적 요구를 정식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결집을 시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만이 노동조합은 ‘조합주의’적인 것이 아닌, 운동적 조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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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펌] 산별노조에 대한 문제의식 몰~* 2002.10.30 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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