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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겔스 : 공산주의 원리

공돌이 2002.10.16 15:29 조회 수 : 1058 추천:37

공산주의의 원리*

*엥겔스의 저작 「공산주의의 원리」는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 초안으로서 제출된 것이다. 강령을 문답형태로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의인동맹'이 재조직되어 공산주의자동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던 동맹의 제1회 대회(1847년 6월)이전부터 논의되었다. 1847년 9월에 런던에 있는 공산주의자동맹 중앙위원회(샤퍼, 바우어 및 몰)는 「공산주의자의 신조」초안을 동맹의 각 지구 및 각 반에 보냈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의 영향이 나타나 있는 이 문서에도, 또 빠리에서 '진정한'사회주의자인 모제스 헤스(Moses Hess)가 만든 '매우 개선된' 초안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12월 22일 공산주의자동맹 빠리 지부의 회의에서 엥겔스는 이 초안을 매우 상세하고도 날카롭게 비판하고는, 새로운 초안을 기초하도록 위임받았다. 그 직후에 작성된 초안이 「공산주의의 원리」이다.
「공산주의의 원리」가 단지 잠정적인 강령의 줄거리를 서술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 엥겔스는 1947년 12월 23~24일에 맑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문답체 형식을 지양하여, 강령을 『공산당 선언』의 형태로 기초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동맹의 제2회 대회(1847년 11월 29일에서 12월 8일까지 열림)는 프롤레타리아당 강령의 과학적 원칙들을 주장한 맑스와 엥겔스 두 사람에게 선언의 작성을 위임하였다. 『공산당 선언』을 기초하면서 맑스주의의 창시자들은 「공산주의의 원리」에 개진되어 있던 몇가지 명제들을 이용하였다.


문1.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답. 공산주의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을 위한 조건에 관한 이론이다.

문2. 프롤레타리아트란 무엇인가?
답. 프롤레타리아트란 어떠한 자본소득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노동*의 판매만이 생계유지의 유일한 수단이 되며, 어떠한 자본의 이윤으로도 생활하지 않는 사회계급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행과 불행, 삶과 죽음, 그의 모든 존재는 노동에 대한 수요, 즉 호황 또는 불황이라는 경기변동, 무정부적인 경쟁에서 비롯되는 변동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프롤레타리아트 또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은 한마디로 19세기의 노동자계급을 말한다.

*맑스와 엥겔스는 초기의 저작들 속에서는 아직 노동의 판매에 대해 논하고 있다. 나중에 맑스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을 판매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점에 대해서는 맑스의 노작 『임노동과 자본』을 위하여 엥겔스가 쓴 서론에 나오는 설명을 보라.

문3. 그렇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던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답.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과 근로계급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었고, 근로계급은 대부분 가난했다. 그러나 방금 언급한 형편에서 생활하는 빈민들, 노동자들, 즉 프롤레타리아는 언제나 경쟁이 자유롭고 무절제하지는 않았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 것은 아니다.

문4.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답. 프롤레타리아트는,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그 후 세계의 모든 문명국가들에서 진행된 산업혁명의 결과로 발생했다.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각종 방적기, 동력직조기, 그 밖의 많은 기계장치들의 발명에 의해 일어났다. 이러한 기계들은 매우 비싸서 기존의 생산양식 전체를 변화시킨 소수의 대자본가들만이 소유할수 있었으며 노동자가 불완전한 방적기와 베틀로 만드는 것보다 더 싸고 좋은 상품을 공급할수 있게 됨으로써 기존의 노동자들은 기계에 의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러한 기계들은 대자본가가 전면적으로 공업을 장악할수 있도록 하였고, 노동자들의 하찮은 소유물(수공업 도구, 베틀 등)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자본가들은 곧 모든것을 소유하게 되었고, 노동자들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리하여 직물 산업에 공장제가 도입되었다 - 기계와 공장제의 도입에 일단 추진력이 붙게 되자 다른 모든 공업부문에도, 특히 나염, 인쇄, 도자기, 금속 등의 생산부문에서 공장제가 급속하게 채택되었다. 노동도 많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분화되어 예전에는 전체 상품을 만들던 노동자가 이제는 단지 상품의 한 부분만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의 분업으로 상품은 더 빨리, 따라서 더 값싸게 생산할수 있게 되었다. 분업으로 인해 각 노동자의 노동은 극히 단순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계적 동작으로 전락해 버렸는데, 그러한 동작은 기계도 비슷한 정도로 잘 수행할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잘 수행할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방적업과 직조업에서처럼 모든 공업부문에서는 연이어 증기력과 기계, 공장제가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로인해 모든 남은 산업부문이 대자본가의 수중에 장악됨으로써 노동자는 쥐꼬리만한 마지막 남은 그들의 독립성마저 박탈당하고 말았다. 더욱이 대자본가들에 의해 대규모 작업장이 세워지면서 많은 비용을 절약하게 되고, 또한 노동분업도 충분히 이루어지면서 소장인들에게 압력을 가하게 되어 매뉴팩춰(공장제 수공업)뿐만 아니라 수공업까지도 점차 공장제가 매튜팩춰 부문이 대공업에 의해 밀려나게 되어 거의 모든 노동부문이 공장제에 의해 경영되고, 그 결과 기존의 중간계급, 특히 소규모 수공업 장인들은 점차 소멸하고 종전의 노동자의 지위도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운 두 계급, 즉 점차 다른 모든 계급들을 흡수하고 있는 새로운 두 계급이 출현하였다. 즉,
(1) 모든 문명국에서 이제 모든 생활수단과 이들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시설(기계, 공장 등)을 거의 모두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대자본가계급, 이 계급이 부르주아계급 또는 부르주아지다.
(2) 필요한 생활수단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에게 노동을 판매해야만 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계급, 이 계급은 프롤레타리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불리워진다.

문5.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조건에서 자신의 노동을 부르주아에게 판매하는가?
답. 노동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며, 그 가격은 다른 상품들과 똑같은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대공업 혹은 자유경쟁 -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 두가지는 결국 같은 의미다 - 의 지배하에서의 상품가격은 항상 평균적으로 그 상품의 생산비용과 같다. 따라서 노동의 가격도 역시 노동의 생산비용과 같다. 노동의 생산비용이란 노동자가 현재의 노동상태를 유지하고, 노동계급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합과 같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노동자는 그의 노동의 대가로 그러한 목적에 필요한 수준 이상은 받지 못하며, 노동가격, 즉 임금은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 즉 최저 수준일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은, 호황이냐 불황이냐에 따라 공장주가 그의 상품을 비싸게 또는 싸게 파는 것에 따라 많이 또는 적게 받게 된다. 그러나 호황이든 불황이든 간에 공장주는 그의 상품에 대해 생산가격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평균적으로 받듯이 노동자도 평균적으로 이러한 최소한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받는다. 이러한 임금의 경제법칙은 대공업이 모든 노동부문을 장악하면 할수록 더욱 엄격하게 적용될 것이다.

문6. 산업혁명 이전에는 어떠한 근로계급이 존재했는가?
답. 여러 사회발전의 단계에 따라 근로계급은 각기 다른 조건에서 살았고, 유산계급, 즉 지배계급에 대한 관계도 다양했다. 고대에 근로인민들은, 아직도 많은 후진국, 심지어는 미국 남부에서도 여전히 그러한 것처럼 자신들의 주인의 노예로서 존재했다. 중세에 근로인민들은, 아직도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에서 그러한 것처럼 토지를 소유한 영주에게 속하는 농노로서 나타났다. 중세와 산업혁명까지 도시에는 또한 쁘띠부르주아 장인들에게 고용된 수공업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매튜팩춰의 발전과 함께 점차 매뉴팩춰 공장노동자들로 나타났고, 지금은 크고 작은 자본가들에게 고용되어 있다.

문7. 노예와 프롤레타리아는 어떻게 다른가?
답. 노예는 한번에 완전히 팔리는 데 반하여, 프롤레타리아는 매일 혹은 매시간 단위로 자신을 팔아야만 한다. 각 개별 노예는 노예주 개인의 재산이므로 바로 이 노예주의 이익 때문에 아무리 비참하다 할지라도 그 생존은 보장된다. 각 개별 프롤레타리아는 전체 부르주아계급의 소유로 누군가가 필요할때에만 그의 노동을 구매하므로 그 생존의 보장은 전혀 없다. 이들은 단지 프롤레타리아 계급 전체로서의 생존만이 보장될 뿐이다. 노예는 경쟁하지 않지만 프롤레타리아는 경쟁 속에 존재하고 경쟁의 모든 변화를 감지한다. 노예는 물건으로 취급되어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인간으로 간주되어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따라서 노예가 비록 프롤레타리아보다는 나은 생활을 할지도 모르지만, 프롤레타리아는 노예보다 높은 사회발전의 수준에 속해 있고 그 자신 노예보다도 높은 단계에 있다. 노예는 모든 사적 소유관계 중 단지 노예제만의 파괴를 통해 해방되어 자신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화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사적 소유 일반을 폐지함으로써만 해방될 수 있다.

문8. 프롤레타리아와 농노는 어떻게 다른가?
답. 농노는 생산도구와 약간의 경작지를 점유하고 사용하며 그 대가로 수확의 일부나 부역을 제공한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는 다른 사람의 생산도구를 가지고 그 사람을 위해 일하며, 그 대신 수익의 일부를 받는다. 농노는 바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받는 것이다. 농노는 생존이 보장되나 프롤레타리아는 그렇지 못하다. 농노는 경쟁을 하지 않으나 프롤레타리아는 경쟁에 직면한다. 농노는 도시로 도망하여 자유로워지고, 거기서 수공업자가 되거나 영주에게 노동이나 생산물 대신 화폐지대를 지불함으로써 자유차지농이 되거나, 또는 그의 영주를 몰아내고 스스로 소유자가 됨으로써, 즉 요컨대 이런저런 방식으로 소유자계급의 대열 및 경쟁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스스로를 해방한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는 모든 계급차별과 사적소유 및 경쟁의 폐지를 통해서만 자신을 해방시킨다.

문9. 프롤레타리아와 수공업자는 어떻게 다른가?
답. .....*

*대답이 누락된 것은 엥겔스의 원고 가운데 일부가 반쯤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문10. 프롤레타리아와 매뉴팩처 노동자는 어떻게 다른가?
답. 16∼18세기에 존재했던 매뉴팩춰 노동자는 거의 모든 곳에서 여전히 자신의 생산도구, 즉 직조기, 가정용 물레 그리고 여가시간에 그가 경작하는 자그마한 땅뙈기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는 이러한 것들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매뉴팩춰 노동자는 거의 전적으로 농촌에 살며 그의 고용주 혹은 영주와는 다소간 가부장제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는 대부분 대도시에 거주하고 고용주에 대한 그의 관계는 오로지 금전적 관계다. 대공업에 의해 그의 가부장제적 조건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매뉴팩춰 노동자는 그가 그때까지 소유하고 있던 재산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그 자신의 프롤레타리아로 된다.

문11. 산업혁명의 발생과 부르주아 및 프롤레타리아로의 사회적 분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답. 우선 첫째로 기계노동으로 공업생산물의 가격은 계속 하락하였기 때문에 매뉴팩춰나 수공업노동에 의존하는 공업의 낡은 제도는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역사발전으로부터 다소간 단절되어 그 산업이 아직까지도 매뉴팩춰에 기반하고 있던 모든 반(半)미개국들도 이리하여 강제적으로 그들의 고립성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들 국가들은 영국의 값싼 상품을 구매하여 자기 나라의 매뉴팩춰 노동자들을 파멸시켰다. 그 결과 수천년 간이나 정체되어 있던 이들 나라에서는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 모든 것이 변혁을 경험했으며 심지어는 중국조차도 지금 혁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리하여 오늘날 영국에서 발명된 기계는 일년도 안되어 중국의 수백만 노동자들의 일용 양식마저 빼앗아 버리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러한 경로로 대공업은 전세계 모든 민족들을 상호 연관시켰고 모든 소규모 지역적 시장을 단일한 세계시장으로 통합하였으며, 세계 어디서나 문명과 진보를 위한 길을 열었고, 문명국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다른 모든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따라서 만약 지금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해방한다면 이것은 반드시 다른 모든 나라들에서 혁명을 불러일이킬 것이고, 그 혁명은 조만간에 역시 그 나라들의 노동자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둘째로 대공업이 매뉴팩춰를 대신한 곳에서는 어디든지 산업혁명이 부르주아지의 부와 권력을 최고도로 발전시켜 부르주아지를 나라의 제1의 계급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부르주아지가 정치권력을 자신의 수중에 장악했고, 지금까지의 지배 계급들, 즉 귀족, 동업조합 장인, 그리고 양자를 대표하는 절대군주제를 몰아냈다. 부르주아지는 특권상속 혹은 토지소유 판매금지 및 귀족적 특권을 폐지함으로써 귀족권력과 귀족계급을 폐지시켰다. 또 부르주아지는 모든 길드와 동업조합의 특권을 폐지함으로써 동업조합 장인의 권력을 파괴했다. 부르주아지는 이 두 가지로 자유경쟁, 즉 모든 사람이 어떠한 산업분야에서든 종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필요한 자본이 부족한 것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그가 이 일에 종사하는 것을 방해할수 없는 그러한 사회제도로 바꾸었다. 그러므로 자유경쟁의 도입은 이후에는 사회성원은 단지 그들의 자본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만 불평등하다는 것, 자본이 결정적인 힘이라는 것, 그러므로 자본가, 즉 부르주아지가 사회에서의 첫번째 계급이라는 것에 대한 공공연한 선언이다. 그런데 자유경쟁은 대공업이 성장할수 있는 유일한 사회상태이기 때문에 공업의 초기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부르주아지가 귀족계급과 동업조합의 사회적 힘을 타도하자 이어서 그들의 정치권력 역시 타도했다. 부르주아지는 사회에서의 첫번째 계급이 된후, 또한 스스로를 정치분야에서의 첫번째 계급으로 선언했다. 부르주아지는 자유경쟁의 법적 인정과 법 앞에서의 부르주아적 평등에 기초하는 대의제를 수립함으로써 그렇게 하였는데, 유럽 여러 국가들에서 그것은 입헌 군주제의 형태로 도입되었다. 이러한 입헌군주제하에서는 오직 일정한 자본을 소유하는 자, 즉 부르주아만이 선거권을 가진다. 이들 부르주아 유권자들이 대의원을 선출하며, 이들 부르주아 대의원들은 납세 거부권을 가지고 부르주아 정부를 선출한다.
셋째로 산업혁명은 그것이 부르주아지를 발전시켰던 것과 같은 정도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발전시켰다. 부르주아지가 부를 획득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프롤레타리아의 수는 늘어났다. 오직 자본만이 프롤레타리아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고, 자본은 노동을 고용할 때만 증대 될 수 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은 자본의 성장과 똑같이 보조를 맞추게된다. 동시에 산업혁명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공업발전에 유리한 대도시로 불러모으고, 그리고 한 시점에 엄청난 대중이 함께 모이게 됨으로써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된다. 더구나 산업 혁명이 발전할수록 수공업노동을 쓸모 없게 만드는 기계가 점점 더 많이 발명됨에 따라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공업은 점점 더 임금을 최저한으로 압박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조건을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이리하여 산업혁명은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점점 커지는 불만에 의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점점 커지는 힘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사회혁명을 준비한다.

문12. 산업혁명의 또 다른 결과들은 무엇인가?
답. 대공업은 증기기관과 다른 기계들처럼 짧은 시간동안에 싼 비용으로 공업생산을 무제한으로 증대시키는 수단을 만들어냈다. 대공업의 본질적인 결과인 자유경쟁은 생산의 확대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곧 극도로 강렬한 본성을 띠게 되었다. 많은 자본가들이 공업에 달려들어 얼마 안가서 수요보다 훨씬 많은 상품이 생산되었다. 그 결과 생산된 상품이 팔릴 수 없게 되어, 소위 상업공황이 발생했다. 공장은 조업을 중단해야 했으며 공장주는 파산했고, 노동자는 그들의 빵을 잃었다. 극도의 빈곤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과잉생산물이 판매되고, 공장들은 다시 가동되기 시작하고 임금은 오르고 점차적으로 경기는 예전보다 더 활발해진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지나치게 많은 상품이 생산되어 새로운 공황이 발생하고 지난번과 똑같은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금세기 초 이래 공업의 상태는 호황과 공황 시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했고, 거의 5 ~ 7년마다 이러한 공황이 반복하여 닥쳐왔으며 그때마다 이 공황은 노동자들에게 극심한 빈곤, 전반적인 혁명적 소요와 기존 체제에 대한 최대의 위험을 초래했다.*

*1892년에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제2판 서문에서 19세기 초의 산업공황 주기에 대해 이렇게 썼다 : "본문에서는 산업 대공황의 주기가 5년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시기규정은 1825년에서 1842년 사이에 발생한 사건들의 진행으로부터 피상적으로 도출해낸 결론이다. 그러나 1842년부터 1868년까지의 공업의 역사는 실제의 공황주기가 10년이라는 사실과 그 주기의 중간에 일어나는 공황은 부차적인 것이며, 1842년 이후에는 차차 소멸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13. 이러한 규치적으로 반복되는 상업공황으로부터 어떠한 결론이 나오는가?
답. 첫째로 비록 대공업은 그 발전의 최초의 단계에서는 스스로 자유경쟁을 만들어 냈지만 지금은 자유경쟁에 부적절할 정도로 지나치게 성장했다는 것. 경쟁과 개인들에 의한 공업생산이 일반적으로 대공업에 질곡으로 작용하여 대공업이 그것들을 파괴해야만 하고, 또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 대공업이 현재의 기초위에서 경영되는한 그것은 매 7년마다 반복되는 전반적 혼란을 통해서만 유지될수 있는데 그러한 전반적 혼란은 매번 프롤레타리아를 궁핍의 구렁텅이로 던져 버릴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부르주아까지도 몰락시킴으로써 문명 전체를 위협한다는 것. 그러므로 대공업을 포기하든가 - 이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완전히 새로운 조직화, 즉 거기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개별 공장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사회 전체는 확고한 계획에 따라 모두의 필요에 따라 공업 생산을 운영하는 사회조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다는 것.
둘째로 대공업과 이것에 의해 가능해진 생산의 무한한 확장은 사회의 모든 성원이 가장 완전한 자유경쟁에서 그의 모든 능력과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고 발휘 될 수 있기에 충분할 정도의 모든 생활필수품이 생산되는 사회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현재 사회에서 모든 빈곤과 모든 상업공황을 낳는 대공업의 바로 그러한 특질이 다른 사회조직에서는 그러한 빈곤과 비참한 변동을 근절시키리라는 것.
이리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이 명확히 증명된다.
(1) 오늘날의 모든 불행은 오로지 시대적 조건에 더 이상 맞지 않는 낡은 사회질서 때문이라는 것.
(2) 새로운 사회질서의 수립을 통하여 이들 불행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단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

문14. 새로운 사회질서는 어떠한 것이어야만 하는가?
답. 무엇보다 먼저 새로운 사회질서는 서로 경쟁하는 각 개인들의 수중에서 모든 생산부문과 공업의 운영을 탈취할 것이다. 그 대신 이들 모든 산업부문을 사회 전체를 위해, 즉 사회계획에 따라, 그리고 모든 사회 성원의 참여하에 운영될 것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사회질서는 경쟁을 폐지하고 협동체를 건설할 것이다. 개인에 의한 공업의 경영은 사적 소유의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에, 그리고 경쟁은 공업이 개별 사적 소유자에 의해 경영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적 소유는 공업의 개별적 경영 및 경쟁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사적 소유 또한 폐지되어야만 할 것이고, 그 대신에 모든 생산도구의 공동사용, 공동합의에 의한 모든 생산물의 분배, 즉 소위 재산공유가 등장할 것이다. 사적 소유의 폐지는 공업발전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결과되는 전사회체제 변환의 가장 간결하고 가장 특징적인 집약적 표현이다. 따라서 사적 소유의 폐지가 공산주의자가 제기하는 주요한 요구라는 점은 당연하다.

문15. 그러면 예전에는 사적 소유의 폐지가 불가능했는가?
답. 그렇다. 사회질서에서의 모든 변화와 소유관계에서의 모든 혁명은 낡은 소유관계에 더 이상 조응하지 않는 새로운 생산력의 창출의 필연적인 결과다. 사적 소유 그 자체도 이러한 식으로 생겨났다. 왜냐하면 사적 소유가 항상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고, 중세 말기에 그 당시의 봉건적·협동조합적 소유와는 양립할 수 없던 매뉴팩춰라는 새로운 형태의 생산양식이 도입되었을 때 낡은 소유관계와는 부적절할 정도로 크게 성장한 매뉴팩춰가 사적 소유라는 새로운 소유형태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매뉴팩춰 시기와 대공업 발전의 최초단계 동안에 사적 소유에 기초하여 세워진 것 외에 다른 어떤 사회질서도 있을 수 없었다. 모두를 부양할 뿐만 아니라 사회자본을 증대시키고, 생산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잉여생산물을 제공하는 데 충분할 만큼 생산될 수 없는 한 항상 사회의 생산력과 가난한 피억압계급을 지배하는 지배계급이 존재하지 않을수 없다. 이들 계급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는가 하는 것은 생산의 발전단계에 달려 있다. 농업에 의존하던 중세에는 영주와 농노가 있었고 중세 후기 도시에는 길드장인과 그의 도제 그리고 일용노동자들이 있었고 17세기에는 매뉴팩춰 사업주와 매뉴팩춰 노동자가 있었고, 19세기에는 대공장주와 프롤레타리아가 있다. 지금까지 생산력이 아직 모두에게 충분할 만큼 생산하고 사적 소유를 이들 생산력에 대한 질곡, 즉 장애가 될 만큼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대공업의 발전으로, 첫째 전례 없는 규모로 생산력과 자본이 창출되었고 짧은 기간에 이들 생산력을 무한히 증가시키는 수단이 있게되고, 둘째 이 생산력이 몇몇 부르주아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대다수 인민대중은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고, 그들은 부르주아의 부가 증대할수록 점점 더 비참하고 참을 수 없게 되며, 셋째 이들 강력하고 용이하게 증대되는 생산력이 사적 소유와 부르주아에게는 부적절할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기 때문에 그것이 사회질서에 끊임없이 폭력적인 교란을 야기하는 바로 이러한 때인 현재만이 사적 소유의 폐지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필연적인 것으로 되었다.

문16. 사적 소유의 폐지는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가능한가?
답. 그럴수만 있다면 매우 바람직스러운 일이고 공산주의자는 분명히 이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모든 음모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이 의도한 대로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언제 어디서나 혁명은 특정 정당과 한계급의 지도 및 의지로부터는 완전히 독립적인 상황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들은 프롤레타라이트의 발전이 거의 모든 문명국에서 강제적으로 억압당할 것이고, 그로 인해 공산주의자의 적들은 모든 방식으로 혁명을 진전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마침내 억압당한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으로 나아간다면 그때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지금 우리가 말로써 옹호하는 것 못지 않게 행동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를 방어할 것이다.

문17. 사적 소유의 폐지는 한번에 가능한가?
답. 아니다. 그러한 일은 기존의 생산력을 공동체 사회의 창설에 필요한 정도로 한번에 증대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명백하게 다가오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단지 현존하는 사회를 점진적으로만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고 필요한 만큼의 생산수단이 창출될 때에만 사적 소유를 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문18. 이 혁명은 어떠한 과정을 거칠까?
답. 우선 첫째로 혁명은 민주주의적 국가제도를 건설하고, 그리고 그를 통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를 확립할 것이다. 이미 프롤레타리아트가 인민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인민의 다수가 프롤레타리아뿐 아니라 소농과 쁘띠부르주아로 이루어진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간접적으로 확립할 것인데, 이들 두 나라의 소농민과 쁘띠부르주아는 이제 막 프롤레타리아트로 이행하고 있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실현에서 더욱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의존하므로 조만간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이를 위해서는 또다른 투쟁이 필요할텐데 그것은 분명히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로서만 끝날 것이다. 만일 민주주의가 직접적으로 사적 소유를 공격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생존을 보장해 줄 폭넓은 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즉각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전혀 쓸모없을 것이다. 이들 수단들 중에서 현재 이미 현존하는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누진세, 고율의 상속세, 방계(형제, 조카 등등)에 대한 상속의 폐지, 강제공채 등등에 의한 사적 소유의 제한.
(2) 한편으로는 국영산업과의 경쟁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불환지폐로의 배상지불에 의해 지주, 공장주, 철도 및 선박 소유주의 재산에 대한 점진적인 몰수.
(3) 다수인민에 대항하는 모든 반역자와 망명자의 재산몰수.
(4) 국유지, 국영공장 및 작업장에서의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을 조직하고, 직업을 제공하는 것. 그를 통해 노동자들 서로간의 경쟁을 폐기하고 공장주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공장주에게 국가에서 지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임금을 지불하게 하는 것.
(5) 사적 소유가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사회의 모든 성원에게 균등한 노동의무를 부과하고, 산업군 특히 농업을 위한 산업군을 육성하는 것.
(6) 국가자본에 의한 국립은행을 통해 모든 개인은행과 금융거래를 폐지하고, 모든 금융과 신용업무를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키는 것.
(7) 국영공장, 작업장, 철도, 선박을 증대시키고 모든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 국가가 처분할수 있는 자본과 노동자가 늘어나는 것과 같은 비율로 이미 경작되고 있는 토지를 개량하는 것.
(8) 어머니의 보호가 없어도 될 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 모든 어린이를 국가비용으로 국영기관에서 교육하는 것.
(9) 농업뿐만 아니라 공업에 종사하는 주민공동체를 위한 공동주택으로서 국유지에 대주택을 건설하는 것. 도시생활과 농촌생활의 장점을 결합하여 주민들이 이 두 생활양식의 일면성과 편협함으로 손해보지 않도록 하는 것.
(10) 모든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주택과 집단거주지를 파괴하는 것.
(11) 서자에게도 적자와 평등한 상속권을 인정하는 것.
(12) 모든 운송수단을 국가 수중에 집중하는 것.
물론 이들 모든 조치는 한꺼번에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시행하는 것이다. 사적 소유에 대한 근본적인 공격이 일단 가해지면 프롤레타리아트는 계속해서 나아가 모든 자본, 모든 농업, 모든 산업, 모든 운송수단, 모든 교환수단을 점점 더 국가 수중에 집중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의 모든 조치들은 이를 위한 것이고 국가의 생산력이 프롤레타라아트의 노동을 통하여 증대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그것들은 실현가능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집중화된 여러 결과들도 발전할 것이다. 마침내 모든 자본, 모든 생산, 모든 교환이 국가 수중에 장악될 때 사적소유는 저절로 없어질 것이고 화폐는 쓸모 없게 될 것이고 낡은 사회관계의 마지막 형태들도 또한 소멸될 정도로 생산이 증대되고 사람들이 달라질 것이다.

문19. 어떤 한 나라에서만 이러한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까?
답. 그렇지 않다. 대공업은 이미 세계시장을 창출함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민족을 특히 문명화된 민족들을 상호 연결시켰기 때문에 어느 한 민족도 다른 민족에 일어난 일과 무관할 수 없다. 더욱이 대공업은 모든 문명화된 나라들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의 결정적인 두 계급이 되었고 그들 사이의 투쟁이 오늘날의 주요한 투쟁이 될 정도로 이들 모든 나라의 사회발전을 균등화시켰다. 그러므로 공산주의혁명은 단지 일국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문명국가, 즉 적어도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이들 각각의 나라는 공업발전 정도, 부의 축적 정도, 생산력의 크기에 따라 혁명의 발전이 서서히 혹은 급격히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독일에서 혁명은 가장 느리게 진행되고 어렵게 성취될 것이며, 영국에서 혁명은 가장 빠르고 쉽게 수행될 것이다. 혁명은 또한 이제까지 존재해온 발전양식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매우 촉진시킬 것이며, 세계의 여타 국가들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은 세계 혁명이고, 따라서 전세계를 무대로 삼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동시에 시작될수 있을뿐이며, 따라서 한 나라에서만 이 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은 엥겔스의 저작 「공산주의의 원리」에서 최종적으로 정식화되었다. 이것은 독점자본주의 이전 시기에 대해서는 옳다.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서, 레닌은 그가 발견한 법칙, 즉 제국주의시대에 관철되는 자본주의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의 불균등법칙에서 출발하여 사회주의혁명의 승리가 처음에는 몇몇 국가들에서 또는 심지어 한 나라에서도 가능하다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였다. 따라서 그는 모든 국가 또는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사회주의가 동시에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새로운 결론은 레닌의 논문 「유럽 합중국이라는 슬로건에 대하여」에서 처음으로 정식화되었다.

문20. 사적 소유의 궁극적인 폐지의 결과는 무엇인가?
답. 사회가 사적 자본가로부터 모든 생산력 및 교통수단의 이용과 생산물의 교환 및 분배권을 몰수하여, 이용가능한 수단들과 사회전체의 필요에 기초를 둔 계획에 따라 사회가 그것들을 관리함으로써 첫째로 현재와 같은 대공업의 좋지 않은 결과들을 제거할 것이다. 공황은 사라질 것이며, 현재의 사회체제에서는 과잉생산을 초래하고 비극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확대된 생산도 그 때는 오히려 충분하지 못하게 되어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직접적 필요를 초과하는 과잉생산은 비극을 초래하는 대신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킬 것이며, 새로운 필요와 동시에 이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들을 창출해낼 것이다. 그것은 더 한층의 진보를 위한 조건 및 자극이 될 것이며 이전처럼 항상 사회질서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고 진보를 달성할 것이다. 사적 소유의 질곡으로부터 일단 해방되면 대공업은 마치 매뉴팩춰 제도를 오늘날의 대공업과 비교해볼 때 하찮게 보이는 만큼이나 커다란 규모로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공업 발전은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양의 생산물을 사회에 제공할 것이다. 사적 소유의 압박과 그에 따른 토지분할로 인하여 기존의 이용가능한 개선점과 과학적 업적을 도입하지 못함으로써 그 발전이 방해받고 있는 농업도 역시 공업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진보를 기록할 것이며 엄청난 생산물을 사회에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그 사회의 모든 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적절한 분배를 조직할수 있을만큼 충분한 양의 생산물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회가 다양한 적대적 계급들로 분화할 필요가 없게된다. 이것은 불필요하게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체계와는 양립할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계급들은 노동의 분업을 통해 출현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와 같은 형태의 분업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적, 화학적 보조수단들만으로는 공업 및 농업 생산을 위해서 묘사한 수준까지 발전시킬수 없으며 이들 보조수단을 작동시키는 인간들의 능력도 마찬가지로 그에 상응하여 발전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에 농민들과 매뉴팩춰 노동자들이 대공업에 흡수된 후, 그들의 전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들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전체에 의한 생산의 공동관리, 그 결과로서의 생산의 새로운 발전은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필요로 할 것이며, 또 그러한 인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생산의 공동관리는 오늘날의 인간 즉 각 개인이 어느 한 생산부문만을 할당받고, 거기에 속박되고, 그것에 의해 착취당하고, 다른 모든 능력을 상실한채 오로지 하나의 능력만을 발달시키며 오로지 하나의 부문, 전체 생산의 일부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는 수행될수 없다. 이러한 인간들은 이미 오늘날의 공업에서도 점점 불필요해지고 있다. 전체 사회에 의해, 계획에 따라서 공동으로 관리되는 공업은 생산의 전체계를 조망할수 있는 다방면으로 능력이 발전한 전인적인 인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한 사람은 농부로, 다른 사람은 구두제조업자로 그 다음 사람은 공장노동자로 또 다음 사람은 투기업자로 만들어 버린 기계에 의해 이미 파탄된 분업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은 전 생산체계를 빨리 숙달할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그들은 사회적 수요나 그들 자신의 선호에 따라 한 생산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쉽게 옮겨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노동분업이 모두에게 강요하는 발전의 편협성은 폐지될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적으로 조직된 사회는 그 성원들에게 광범위하게 발달한 그들의 능력을 전면적으로 사용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계급들도 필연적으로 소멸될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적으로 조직된 사회는 한편으로는 계급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 자체가 이들 계급 차별을 폐지하기 위한 수단들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결과로서 도시와 농촌 사이의 대립이 해소될 것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계급 대신, 동일한 사람들이 농업과 공업 생산을 같이 수행하는 것은 순전히 물질적인 이유라는 점에서 공산주의적 연합의 필수조건이다. 공업인구는 대도시에 밀집되어 있는 반면에 농업인구는 농업에 분산되어 있는 현실은 아직 농업과 공업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단계에만 적합하며 더 이상의 모든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인데 그것은 오늘날에도 눈에 뛸 만큼 분명하다. 생산력을 공동으로 계획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사회의 모든 성원의 전반적 결합, 모든 사람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생산의 확대, 일부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일부를 희생시키는 상태의 중단, 계급들과 이 계급들 사이의 적대의 완전한 폐지, 지금까지와 같은 분업의 폐지, 산업교육, 활동 분야의 교체, 모두가 생산한 소비재에 모두가 참여하는 것, 도시와 농촌의 연대를 통해 사회 전성원의 능력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는 것 - 이러한 것들이 사적 소유의 폐지가 가져올 주요한 결과들이다.

문21. 공산주의적 사회질서는 가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답. 남녀간의 관계는 사회적 간섭이 필요 없는, 순전히 사적인 당사자들 간의 관계로만 될 것이다. 이는 사적 소유의 폐지와 아이들의 공동 교육의 결과로, 지금까지의 사적 소유를 매개로 한 결혼의 두 가지 토대인 남편에 대한 아내의 종속, 부모에 대한 자녀의 종속이 없어짐으로써 가능해진다. 이것이 공산주의적 부인공유에 반대한다고 떠들어대는 도덕적인 체하는 속물들에 대한 대답이다. 부인공유제는 전적으로 부르주아 사회에 속하는 관계이며, 오늘날 매춘이라고 하는 완벽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매춘은 사적소유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사적 소유의 폐지와 함께 사라진다. 따라서 공산주의적 조직은 부인공유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폐지하는 것이다.

문22. 공산주의적 조직이 기존의 국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 그대로.

엥겔스의 초고에는 문22와 문23의 대답대신 "그대로(bleibt)" 라고만 쓰여있다. 이는 공산주의자 동맹의 강령초안에 정식화되어 있는 것을 자칭하는 것인데 이 강령초안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문23. 공산주의적 조직은 기존의 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 그대로.

문24. 공산주의자는 사회주의자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
답. 소위 사회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부류로 분류할수 있다.
첫째 부류는 대공업과 세계무역에 의해, 그리고 이 두가지가 출현시킨 부르주아 사회에 의해 파괴되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나날이 파괴되고 있는 봉건적 가부장적 사회의 지지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현재 사회의 해악을 보면서 봉건적 가부장적 사회에는 이러한 해악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회가 반드시 재건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그들의 제안들은 모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러한 목표를 겨냥한 것이다.
이러한 반동적 사회주의자 집단이 비록 프로레타리아트의 비참함에 대해서 이른바 동정을 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고 하더라도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에 대해 강력하게 투쟁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1) 전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있고.
(2) 절대군주 또는 봉건군주, 관리, 병사, 성직자를 거느리는 귀족, 동업조합의 장인, 그리고 매뉴팩춰 경영주들의 지배를 부활시키려고 하는데, 그러한 사회에는 비록 현사회가 갖고 있는 폐단들은 존재하지 않지만 대신 그에 못지 않은 많은 폐단들을 가지고 있으며 공산주의적 조직화를 통해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한 아무런 전망도 갖지 못하며,
(3)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이고 공산주의적으로 되면 언제나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드러내며 즉각 프롤레타리아에 대항하여 부르주아지와 야합해 버리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류는 현사회의 지지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회의 불가피한 산물인 폐해를 보면서 현사회의 존립을 우려한다. 따라서 그들은 현사회는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현사회와 관련된 폐해만을 제거하려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들 중 어떤자는 여러 가지 복지정책을 제안하고 다른자는 사회를 재조직한다는 구실로 현사회의 토대, 즉 현사회 자체를 유지하려는 미사여구의 개혁안을 제안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들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과도 역시 끊임없이 맞서서 투쟁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산주의자의 적들을 이롭게 하고 있으며 공산주의자가 없애려고 하는 사회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류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공산주의자들과 같은 길을 걸으면서 문18에대해 밝힌 조치들을 부분적으로 바라고 있지만 그것들을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현사회의 불행과 해악을 없애는데 적합한 수단들로서 간주한다. 이들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자기 계급의 해방을 위한 조건들에 관해 아직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이거나, 민주주의와 그 뒤에 반드시 따르는 사회주의적 조치의 실현이 승리할 때까지는 많은 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동일한 이해를 가진 쁘띠부르주아지의 대표자들이든가 둘 중 하나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이 지배 부르주아지에 봉사하지 않고, 공산주의자들을 공격하지 않는 한, 행동의 순간에는 이들과 제휴하고, 또 일반적으로 현시기에는 적어도 그들과의 공동의 정책을 추구할수 있는 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러한 공동행동이 그들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차별성을 언급하지 말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문25. 우리 시대의 다른 정당들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답. 그 태도는 나라에 따라 다르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와 같이 부르주아지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은 당분간 여러 민주주의적 정당들과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더욱이 민주주의자들이 지금 도처에서 주창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조치의 면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목표에 접근할수록 즉 그들이 프롤레타라이트의 이익을 보다 명확하게 보다 많이 지지할수록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에 더욱더 의존하면 할수록 이러한 이해의 공통성은 더욱 커지고 밀접해진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모두가 노동자들의 차아티스트들이 민주주의적 쁘띠부르주아나 혹은 소위 급진주의자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공산주의자들에 가깝다.
민주주의적 헌법이 도입된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해 이 헌법을 이용하려는 정당, 즉 전미(全美)토지개혁당과 제휴해야만 한다.
스위스에서는 비록 그들이 아직 매우 잡다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당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급진주의 당만이 공산주의자가 제휴할수 있는 정당이며, 이들 급진주의자들 중에서 바틀란트(waadtland)주와 제네바 사람들이 가장 진보적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는 지금 부르주아지와 절대군주 사이의 최후의 투쟁이 임박해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가 지배하기 전에는 부르주아지와의 결정적인 투쟁을 벌이리라고는 예상할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부르주아지가 지배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어서 빨리 이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리하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항상 정부에 대항하여 자유주의 부르주아편에 서야 하지만, 부르주아지의 속임수에 당하거나 또한 부르주아지의 승리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유리할 것이라는 부르주아지의 기만을 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부르주아지의 승리가 공산주의자들에게 가져다 주는 유일한 이익은 다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즉,
(1) 공산주의자들이 보다 쉽게 자신들의 원칙을 지키고, 토론하고, 확산시킴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를 굳건하고 전투적이며 잘 조직된 계급으로 단결하게 할 여러 가지 양보들과 (2) 절대주의 정부가 무너지고 이어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투쟁이 분명히 본격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이후부터 공산주의자들의 당정책은 부르주아지가 이미 지배하고 있는 나라들에서의 그것과 똑같아질 것이다.



1847년 10월 말에서 11월 사이에 엥겔스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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