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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와 푸코의 지식론(박사학위논문)

현장연대 2003.11.24 14:24 조회 수 : 18925 추천:53


알튀세르와 푸코의 지식론

양승호


1. 서 론

1.1. 알튀세르와 푸코 지식론의 지평

알튀세르(Althu s ser , Louis )는 60- 70년대에 주로 활동한 프랑스 공산당 출
신의 국제적인 철학자이다. 그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 라틴 아메리카
에서 특히 공산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푸코(F ou cault , Mich el)는 알튀세
르보다 8년 연하이며 그의 전공인 철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문학 등 다방면에
서 주목받았다.
한국에서 알튀세르와 푸코는 80년대에도 소수의 학자들로부터 주목받아 왔
지만, 그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소련 사회주의의 붕
괴로 위기의식을 느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서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국내
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한 대안으로 알튀세르와 푸코에 대해 접근되었고, 현재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알튀세르와 푸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
다.1)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성립시키고자 했던 알튀세르의 시도가 결국 실
패했으며 그 이유는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설정한 기준이 계속
바뀌었다는 것이다. 푸코에 대한 비평가들 역시 푸코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그 근거로는 마르크스주의의 거대 담론과
는 근본적으로 다른 푸코의 미시 담론을 제시한다.2) 또한 일반적으로 알튀세
르사상과 푸코사상이 서로 이질적이어서 결합 불가능한 사상으로 간주된다. 그
래서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하는 경
우에는 푸코 사상의 가치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유사하게 푸코가 마르크스
주의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평가할 때는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를 교조적이
라고 비난한다

알튀세르와 푸코에 대해서 이러한 평가들이 나오게 된 원인은 그들의 지식
론에 주목하지 않은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알튀세르와 푸코에 대한 오해의
근거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의 옹호에 실패했다고
평가한 이유로 과학의 기준이 계속 바뀌었다는 점이 제시되었는데, 이것은 과
학의 기준이 무엇인가하는 지식론이 소홀히 취급된 사정과 연관된다. 푸코의
경우에도 지식론에 주목하면 거대담론이냐, 미시담론이냐의 문제보다는 마르크
스주의와 유사한 유물론적 맥락이 뚜렷해 질 것이다. 이 점에서 알튀세르와 푸
코사이의 결합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알튀세르와 푸코가 주목받게 된 배경이 현실의 마르크스주의 위기
상황이다보니 그들의 지식론이 소홀히 취급되었다. 그 예로 알튀세르 사상에서
과학은 주체 없는 과정(procès san s sujet )이다 는 주장은 현실의 역사적 법칙
에 대한 함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도 담고 있다. 푸코 사상에서는 일반적으로 그의 지식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진리게임 의 의미가 현실 권력 관계 론에 비해 축소되어 다루어진다. 이
처럼 그들의 지식론에 대한 홀대는 그들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그것은 알튀세르와 푸코의 현실에 대한 정치적 주장의 배후
에는 각기 전제하는 지식론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는 알튀세르와 푸코
의 지식론을 부각시켜 그들의 사상을 새롭게 조망해 보고자 한다.
본고는 먼저 현실 사회주의와 유물론 철학을 구별하고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철학의 영역에서는 유물론에 자극을 주어 오히려 유물론을 풍부하게
했다고 본다. 그리고 알튀세르와 푸코는 동일한 유물론적 맥락에서 결합가능하
다는 것이 본고의 관점이다. 알튀세르와 푸코가 유물론을 풍부하게 한 공헌자
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시 두 문제로 나뉘어진다. 즉 알튀세르와 푸코
가 과연 유물론자인가 하는 점과 어떤 측면에서 유물론에 공헌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의 사상이 유물론적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 관념론과 구분 짓는 문제설정인 철학의 근본문제 ( Grun d fr ag e
der Philosophie )에 대한 알튀세르와 푸코의 대답을 찾아본다. 알튀세르의 답
변은 명목론적 유물론(n omin alistic mat erialism )이며, 그것으로 한편에서는 관
념론에 맞서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따라 유물론을 고수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반영이론에 맞서서 명목론을 제시한다. 푸코의 답변은
명목론이며, 그것으로 한편에서는 반영이론에 맞서서 명시적인 명목론을 주장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은밀하게 관념론에 맞서서 유물론을 주장한다. 즉 알튀
세르와 푸코는 여전히 유물론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유물론의
지식론인 반영이론에 맞서 명목론적 관점을 택하여 유물론을 전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동일한 유물론적 지평에서 푸코의 진리게임( 'T h e g ame of
t ru e ' )에 주목하면 알튀세르의 토픽(topique; the topic)3)의 지식론과 별 차이
가 없는 지식론의 기반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알튀세르와 푸코의 명목론적
유물론에 입각한 지식론은 다른 관념론적 지식론의 보편적인 지식이나 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지식론의 인식가능성의 범주를 초과해서 인식의 간
과 (ov er sig htin g ) 현상이나 인식이 불투명성까지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
고 있다.
본고의 위치는 알튀세르와 푸코의 지식론과 알튀세르와 푸코 사상을 옹호
하기 위한 지식론 사이에 존재한다. 즉 한편으로는 그들의 이론에 근거하고 다
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위해 일반적 해석과 달리 새롭게 해석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주체화과정 ( ' su bj ectivization ' ), 주체없는 과정 ( ' th e proces s
with out subj ect ' ) 등에 대한 해석에서 이데올로기, 이론, 역사, 실천으로 나누
어서 해석한 것이 그것이다. 또한 푸코의 진리게임론과 권력관계론 그리고 자
기에의 배려 (th e car e of th e self )에 대해 원래의 의미로 사용하지만, 그 의미
를 푸코의 초기 사상부터 적용해서 해석하고, 푸코의 고고학(ar ch aeology ), 계
보학(g en ealogy ), 지형학(g eogr aphy ) 등에 대해서는 맥락에 따라 새로운 의미
를 부가하고 있다.
토픽과 진리게임은 명사로서 지식 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이지만 동사로서 구
체적인 개인의 인식한다 로 이해해보면 그 함의가 제대로 파악된다.4) 본고의 지
식론의 배경에 익숙하지 않거나 기존의 지식론과 비교를 위해서 코드 전환 독
해방법을 제안한다.5) 알튀세르의 토픽 과 푸코의 진리게임 이라는 용어를 데
카르트(Descart es , Ren é)의 사유한다 로, 로크(Lock e, J ohn )의 경험한다 로, 칸
트(Kant , Imman u el)와 후설(Hu s serl, Edmun d )의 인식한다 로, 호스퍼스
(Hosper s , J ohn )의 안다(kn ow ) 로, 비트겐슈타인(Wittg en s st ein , Lu dwig )의 언
어게임(Spr ach spiel) 으로 바꾸어 보면 본고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알튀세르와 푸코의 지식론을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알튀세
르와 푸코 사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접근 관점이다. 알튀세르의 유
물론 철학은 일반적으로 초기[60(48)- - 66 (67 )], 중기[67 - - 76]6), 후기
[76- - 80.11.]7), 말기[80.11.- - 90]8)의 네 단계로 구분하여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알튀세르 지식론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세
력관계로서의 토픽론이다. 그러나 토픽의 지식론에 해당하는 과학성의 내재적
기준은 초기 자본 을 읽자 부터 등장한다. 따라서 본고는 알튀세르 사상에서
시기상의 차이를 강조하지 않고 전체사상의 일관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본고는 알튀세르의 지식론에서 핵심개념을 이루는 지식의 대상과 토픽 개념은
표면상의 등장시기와 관계없이 초기부터 존재한 것으로 간주해야만 알튀세르
전체사상이 일관성 있게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본고는 푸코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푸코 사상은 일반적으
로 초기의 고고학 시기, 중기의 계보학 시기 그리고 후기의 저항을 사고하기
위한 자기에의 배려시기로 구분된다. 비슷한 관점을 달리 표현해 보면, 푸코는
초기에는 지식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중기에는 권력과 지식 문제에 관심을 가
지고, 후기에는 진리게임과 주체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시기구분의 관
점에서 보면, 통치성 (78.2.)9) 이전의 초·중기는 권력과 지식 사이의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고 통치성 (78.2.) 이후의 후기에는 지식과 주체 사이의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다. 대개 푸코 사상에 대한 이해는 초·중기의 권력과 지식 사
이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과 후기의 진리 게임(=지식)과 주체(=자기에의 배려)
로 파악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단절로 보느냐, 연속으로 보느냐에서 쟁점이 발
생한다. 본고는 푸코가 후기에 등장시킨 진리게임론을 초 중기부터 등장한 것
으로 이해해도 초기 저작과 모순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푸코를 일
관된 진리게임의 사상가라고 이해하고 푸코 사상의 시기 구분에도 주목하지
않는다.
이제, 이 논문의 전체 서술 순서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에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철학의 근본문제 를 살펴보고 정통 마르크스- 레
닌주의의 관점과 비교해서 알튀세르와 푸코의 명목론적 유물론을 살펴보고 토
픽과 진리게임에서 진리의 전유 문제를 제기한다. 제2장, 지식론에서는 알튀
세르의 토픽의 지식론과 푸코의 진리게임의 지식론을 결합해서 토픽과 진리게
임의 지식론을 구성한다. 제3장, 지식과 현실에서는 현재사로서의 현실 차원
에서 지식과 현실 사이의 문제와 진리의 유한한 활동시간에 대한 문제를 다룬
다. 제4장, 지식과 현실 그리고 실천에서는 알튀세르와 푸코의 실천적 목표와
이론적 쟁점에 관해서 다룬다.

1.2 . 문제설정 : 철학의 근본문제 와 명목론적 유물론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특징은 의식적으로 유물론의 입장을 취하는 데에 있
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있어서 철학의 근본문제 는 물질과 의식 사이의 관
계문제 이며 이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을 나누는
구획선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이 문제의 성립과 발전사를 살펴보자. 마르크
스(Marx , Karl Heinrich )는 관념론에 대립하는 형태의 유물론을 제시하였다.10)
그리고 엥겔스(En g els , F riedrich )는 철학의 근본문제(=존재와 사유, 자연과
정신사이의 문제) 에 대한 답변을 중심으로 유물론과 관념론을 마르크스주의
의 역사에서 최초로 정식화시켰다.11) 레닌(Lenin , Wladimir Iljit sch )은 엥겔스
가 정식화한 철학의 근본문제 를 물질과 의식 사이의 문제 로 정교화하였
다.12) 레닌 이후 스탈린시기에 철학의 근본문제는 소비에트교과서체계의 변증
법적 유물론 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다.13) 스탈린 사후에 철학의 근본
문제의 지위 문제를 둘러싸고 소련에서는 철학논쟁 (=변증법유물론교과서체
계논쟁)이 있었고,14) 동독에서는 실천논쟁 이 있었다.15) 소련의 오이저만
(Oizerman , T eodor Ily rich )은 이런 논쟁을 정리해서 비교적 정돈된 입장을 제
시하였다.16) 레닌이 정리한 물질과 의식의 관계문제는 물질과 의식 사이에서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의 문제와 인간의 의식이 물질(세계)을 인식할 수 있느냐
의 문제로 나뉘어진다. 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유물론적 답변에 따르면 물
질이 의식보다 우선하고 물질세계가 인간의 의식에 반영되므로 인간의 의식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유물론적 답변은 첫 번째 측
면에서는 의식에 대해 물질이 우선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측면에서는 인간의
의식이 물질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유
물론적 답변을 정리하면 물질이므로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기 위해서
물질이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철학의 근본문제의 두 측면에 대한 올바른
답변은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결국 한가지 답변인 유물론적 답
변만 가능한 하나의 문제이므로 철학의 근본문제는 두 측면을 갖지만 한 문제
이다. 이 답변을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의식에 대한 물질의 우선성 : 철학의 근본문제는 한 문제의 두 측면이
다. 이것은 인식가능하기 위해서 세계가 물질로만 된 물질세계이어야 하고, 물
질세계이므로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철학의 근본문제의 첫번째 측면에
대한 답변은 인간의 의식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기 위해서 세계가 오직 물질
로만 구성되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물질과 의식 사이의 관계문제를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시기를 상정
한 물질의 의식에 대한 역사적 시간적 우선성의 존재론적 문제로 제기하는 것
은 문제제기의 차원을 혼동한 것이다. 역사적 시간적 우선성의 답변은 철학의
근본문제같은 과학적 세계관의 수준에서 제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이 성립된 후에 과학차원의 인식에 의존하는 과학적 진술이다.17) 물질로
만 구성된 세계의 공간적 시간적인 무한성은 누구도 모든 세계를 구석구석 탐
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과학적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세계관적 요구이다. 이
것은 이제까지의 과학적 진술에 의해서 결코 반증된 적이 없다18)는 의미에서
동시에, 이제까지의 모든 과학적 진술이 전제로 삼아 가정하면서 전개하는 세
계관이라는 의미에서 과학적 세계관이다.
2) 물질의 의식에의 반영 : 철학의 근본문제의 두 번째 측면은 인간의 의식
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실상 종종 간과되는 숨겨진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의식에 물질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의식이 물질세계를 인식 할 수 있는 이유는 물질세계가 인간의 의식에 반영되
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9)
3) 의식의 물질에 대한 인식가능성 : 철학의 근본문제의 두 번째 측면은 인
간의 의식이 물질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실상 물질은 인
식 가능하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물질이므로 인식가능하고 인식가능하기 위해
서 물질이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철학의 근본문제가 왜 두 문제가 아니라
한 문제의 두 측면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옳은 인식과 그른 인식을 구별하고
어떤 인식이 올바른 인식인지 확인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자본주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현실은폐 기능문제에서 다루어지고, 후자는 진리의 검증기
준의 문제에서 다루어진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은폐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자본주의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없다면 우리는 현
실을 투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 의 2테제에서 진리 검증 기준으로 실
천을 제시하였다. 인간의 사유가 대상적 진리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결코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이다. 인간은 자기 사유의 진
리성을, 즉 현실성과 힘을, 그 차안성을 실천에서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20)
이러한 입장은 레닌에 의해 반복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간의 실천이야
말로 유물론적 인식론의 올바름을 증명한다고 말하고, 인식론의 근본문제를 실
천의 도움없이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를 스콜라 철학 이며, 철학적 변덕 이라고
불렀다. 21) 이러한 진리와 실천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스탈린 이후에 마
르크스- 레닌주의주의에서 계승되었다. 즉,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는 과학성의
검증기준을 실천에 두고 있다.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유물론적 답변은 과학을 거부하는 관념론적 답변
과 대비된다. 유물론이 과학을 옹호하는 세계관이라면 유물론에 반대하는 관념
론은 과학을 거부하는 세계관이다. 관념론은 인간의 의식으로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인 신(神)의 영역을 상정하게 되기 때문에 사실상 종교적 세계관이고 신화
적 세계관이다. 유물론인 과학적 세계관은 착취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
는 과학을 성립시키므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세계관이고, 관념론인 종교적
세계관은 과학을 거부하여 착취의 현실을 은폐하기 때문에 부르주아의 보수적
세계관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철학의 근본문제 에 대해 알튀세르와 푸코가 답변한
것이 명목론적 유물론이다. 알튀세르와 푸코의 명목론적 유물론을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인식론과 대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1) 지식의 대상(obj et de
la conn ais san ce )이 현실대상(objet r éel/ r eal obj ect )22)을 전제한다는 유물론적
테제, 2) 현실대상인 계급투쟁이 우위이고 지식의 대상인 토픽은 그것에 종속
된다는 유물론적 테제, 3 ) 지식의 대상이 현실대상과 구별된다는 명목론적 테
제이다. 알튀세르의 명목론적 유물론의 대상은 토픽이다. 토픽은 이론과 이데
올로기사이의 세력 관계를 의미하는 공간적인 개념장치이다. 명목론적 유물론
의 인식 구조는 이데올로기의 구조와 동형적이며 또한 이론의 구조와도 동형
적이다. 들뢰즈의 푸코 에 따르면 푸코는 언표가능한 것((l 'énonçabe )과 가시
적인 것(be v isible) 사이의 결합으로 구성된 명목론적 유물론의 지식론을 제시
한다. 알튀세르와 푸코는 양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명목론적 유물론의 지식론
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두 지식론은 차이가 있지만 반영이론이나 대응이론
의 지식론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하는 앞에서 다룬 내용의 부연설명으로 알튀세르와 푸코의 명목론적 유
물론을 각각 나누어서 살펴보겠다. 알튀세르와 푸코의 명목론적 유물론은 상당
히 복잡한 쟁점23)을 함의하고 있지만 본고에서는 기본적인 부분만 다룬다. 먼
저 알튀세르를 다루고 이어서 푸코를 다룬다.
알튀세르의 명목론적 유물론은 과학적 지식이 성립하기 위한 기본 전제이다.24)
이 명목론적 유물론은 철학에 속한다. 알튀세르의 철학관과 과학관을 살펴보면
이전의 마르크스- 레닌주의와는 다른 규정을 하고 있다.25) 과학은 대상이 있고, 철
학은 대상이 없는 학문이라고 한다. 철학에는 과학을 돕는 유물론과 과학을 이용해
서 자신의 존립기반을 만드는 관념론이 있다. 유물론은 그 목적이 과학을 돕는 데
에 있고 관념론26)은 과학을 이용해서 자신의 존립기반에 이용하므로 과학을 착취
한다. 유물론은 전장(Kampfplatz)에서 차지한 거리의 공간(le v ide d 'un e distance
prise )이고,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고, 구획선을 긋는 것이다(tr ace des lign es de
démarcation ).
알튀세르는 과학을 돕기 위한 철학으로 명목론적 유물론을 제시한다. 이 명목
론적 유물론은 현실에 대한 종착없는 무한 근접의 인식 에서 명목론적 인식
으로 이동하거나 또는 양자 사이를 요동한다.
알튀세르는 자본 을 읽자 에서 명목론적 유물론27)을 설명한다. 현실의
개와 개 관념은 다르다. 전자의 개는 현실대상이고 후자의 개 는 지식의 대
상이다. 여기서 개와 개 가 구별된다는 것으로 명목론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개는 명목론적인 지식의 대상으로서 개 이지 현실대상의
개가 아니다. 알튀세르는 아미엥의 주장 (1975 )에서도 명목론적 유물론을
반복한다.
마르크스는 지식의 대상에 대한 현실 대상의 우위라는 테제를 통해서, 그
리고 두 번째 테제. 즉 현실대상과 지식의 대상의 구별에 대한 첫 번째 테제의
우위를 통해서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보다 확실하게 자신을 보호하였다. 28)
여기에서 알튀세르의 명목론적 유물론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명목론의 성
격이 생산과정으로서의 지식론29)으로 표현된다. 알튀세르의 명목론은 유물론
(지식의 대상에 대한 현실대상의 우위)을 고려하지 않으면 관념론이 된다. 알
튀세르는 자신의 지식론이 중기에는 단순히 명목론이 됨으로써 관념론이 될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경계하여 이러한 필수적인 구별이 확고하게 견지되지
않을 때는 명목론, 나아가 관념론으로 인도될 수 있다. 30) 고 하였다.
이러한 명목론은 유물론을 견지해야만 관념론이 될 가능성을 예방할 수 있
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최소한의 일반성, 즉 이 경우에는 유물론적인 테제
들을 획득할 수 있는데 이 테제들은 관념론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킴으로써
지식 생산의 구체적 과정들에 대한 연구를 위해 자유로운 공간을 열어 준다
. 31) 알튀세르 사상에서 나타나는 중기의 명목론에 대한 경계는 말기에 명목론
적 우발적 마주침의 유물론에서는 사라진다.
현실에 대한 지식은 현실에서 무언가를 변화시키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덧
붙일 수는 없다. 엥겔스가 외부적인 덧붙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대한
지식 32)이라고 말한 것과 레닌이 반영에 대한 테제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역설
적인 조건에서만 무언가를 덧붙일 수 있다. 일단 지식의 대상이 산출되면, 그
것은 당연히 현실로 되돌아간다. 지식과정은 매번 현실에 그 고유한 지식을 덧
붙인다. 그러나 그것은 무(無)가 아니다. 왜냐하면 무화되기 위해서 그것은 항
상적으로 제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상적이며, 그것은 지식을 현실
에 되돌려 주기 위해서만 현실에 그에 대한 지식을 덧붙이는 무한한 순환이다.
이 순환은 그것이 재생산되는 한에서만 순환이며 따라서 살아있다. 오직 새로
운 지식의 생산만이 과거의 것들에 생명을 부여한다.33)
알튀세르는 명목론을 수용하는 근거를 엥겔스의 사상에서 찾았다. 엥겔스의
견해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적 반영이론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물론의 최소한의 정의는 지식의 대상은 현실 대상을 전제
한다는 것이다. 사유 또는 의식의 외부에 현실이 존재한다는 테제가 유물론의
최소한의 정의라면 프로이트는 유물론자이다. 34) 또한 유물론은 이데올로기층
의 두께를 벗겨 내는 것이다. 닦아내기 란 무엇인가? 완전히 제조된 이념들로
된 이데올로기적인 층을 비판적으로 깎아 내리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이질적
인 첨가 없이 현실과의 접촉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35) 토픽에서 이론과 이데
올로기 사이의 관계로 보면, 이데올로기에서 이론으로의 계속되는 절단을 해서
현실 과의 접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현실과의 완전한 접촉은 투명한 인식이
불가능하므로 불가능하다. 토픽의 계속되는 절단은 결국 종착없는 접근의 유
물론이 된다.
알튀세르의 명목론적 유물론은 다른 한 축이 명목론적 우발적 마주침의
유물론이다. 알튀세르가 말기에 도달한 상수와 변이의 지식론은 명목론적 우발
적 마주침의 유물론을 전제한다. 이 유물론에서 세계는 클리나멘(clinamen )들이
우발적으로 떨어지는 세계이다. 클리나멘(편의)은 원래 에피쿠로스의 철학적 개념
이다. 알튀세르가 사용한 클리나멘이 천문학적 사실을 가리키면 (대상없는 학문인)
철학이 아니라 (대상있는 학문인) 과학에 속한다. 알튀세르 철학에서 사용된 이 클
리나멘 개념은 원래의 의미를 떠나서 현실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칸트의 물자체
의 세계에 속하는)세계관에 등장하는 철학적 비유이다. 알튀세르는 그것의 발견
(dé couv ert e), 사고 혹은 인식되기 (fait d 'être peu sé ou connu )에 앞서 존재하
는 존재(l 'être ), 현실(leréel) 36)을 상정해서 유물론을 확고하게 견지한다.
이어서 푸코의 명목론적 유물론을 살펴 보겠다. 푸코가 명목론자라는 점은
푸코 자신의 견해로 확인할 수 있다.
"권력의 편재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것은 권력이 자체의 결코 무너지지 않
을 통일성 아래 모든 것을 재편성할 특권을 지니기 때문이 아니라, 매 순간 모
든 상황에서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관계가 맺
어지는 경우라면 어느 때라도 권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권력은 도처에 있다.
이것은 권력이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
다. 그리고 보통 말하는 권력이란, 그것이 영속적이고 반복되고 무기력하고
스스로르 재생산하는 것인 한, 그 모든 유동성들을 출발점으로 하여 뚜렷해지
는 전체적 효과, 그 유동성들 하나하나에 기대며 그리고는 반대로 그것들을 고
정시키려고 하는 연쇄에 지나지 않는다. 필시 명목론의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권력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일부 사람들에게 부여되어
있다고 하는 특정한 권세도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 한 사회에서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부여되는 이름이다 (강조는 인용자)37)
들뢰즈(Deleu ze, Gilles )가 쓴 들뢰즈의 푸코 에 따르면, 푸코의 지식론은
가시적인 것과 언표로 구성되어 있다. 푸코의 가시적인 것은 알튀세르의 명목
론에 해당하고, 언표는 알튀세르의 유물론에 해당한다. 들뢰즈의 푸코 를 보
자.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외부, 대기권의 요소, 지층화되지 않은 실체 에 도
달하기 위해서 지층들 위로 오르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 외부, 대기권의 요소
와 실체는 인식의 두 형태들이 어떻게 각각의 지층에서 한 균열의 가장자리로
부터 다른 균열의 가장자리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 얽힐 수 있는가를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38)
여기서 대기권의 요소 는 명목론을 의미하고, 지층화되지 않은 실체 는 유
물론을 의미한다. 푸코는 유물론자이고 명목론자이다. 본고는 알튀세르와 푸코
사이의 차이를 미세한 차이는 도외시하고 명목론적 유물론이라는 커다란 공통
점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본고는 알튀세르와 푸코의 명목론
적 유물론을 전제하고 출발한다.

1.3 . 알튀세르와 푸코의 해석

알튀세르와 푸코의 지식론을 다루기 위해서 알튀세르와 푸코 해석의 기본
관점을 제시한다. 여기서 제시한 용어들은 이후의 논의에 기본 전제들로 사용
된다. 먼저 알튀세르를 다루고 이어서 푸코를 다룬다.
알튀세르의 범주는 인식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으로 나누어진다39). 인식적
차원에서는 현실대상과 지식의 대상 이라는 범주가 있고, 정치적 차원에서는
정치(계급투쟁)와 토픽(이론/ 이데올로기) 의 범주가 있다. 현실대상 은 계급투
쟁과 같은 말이고, 지식의 대상 은 토픽과 같은 말이다.40) 알튀세르는 지식의
대상이 토픽보다 기본적인 개념이라고 본다. 이러한 사실은 존 루이스에 대한
대답 Ⅲ. 3. 제3테제 에서 알 수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 레닌주의 철학에 있어서, 우리는 존재하는 것
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유물론의 기본적인 테제이다. 즉 의식에 대한
존재의 선차성 이다. 이 테제는 존재에 관한 테제이자 동시에 물질에 관한 테
제이며 또한 객관에 대한 테제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의식의 능동성 , 그리
고 자연과학에서 역사과학- - 그 시험대 는 계급투쟁이다- - 에 이르기 까지, 과
학적 실험의 성과를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은 이 능동성 을 주장
하였으며, 게다가 종종 어떤 관념론적 철학자(예컨대 헤겔)들은 비록 신비화
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비변증법적 유물론자 보다 더 잘 이 능동성 을 이해하
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여기가 바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변증법에 우리가 도
달하는 지점이다. ... 그러나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이 변증법적 테제를 항상
유물론적 테제에 종속시킨다. 이론에 대한 실천의 선차성이라는 유명한 테
제도 의식에 대한 존재의 선차성이라는 테제에 종속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확실히 실천(그
중에서 과학적 실천이야말로 가장 발전된 형태의 실천이다)덕분이다 : 이론에
대한 실천의 선차성. 그러나 실천 속에서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을 알 뿐이다 :
의식에 대한 존재의 선차성. (강조는 알튀세르)41)
의식에 대한 존재의 선차성의 문제는 지식의 대상과 현실대상 사이의 관계
문제이다. 이론에 대한 실천의 선차성 문제는 계급투쟁과 토픽 사이의 관계 문
제이다. 양자는 동일한 쟁점을 다루는데 전자의 경우는 인식적 측면에서 다루
고 후자의 경우는 정치적 측면에서 다룬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론에 대한 실
천의 선차성이라는 유명한 테제도 의식에 대한 존재의 선차성이라는 테제에
종속된다 고 했다.
알튀세르는 현실대상을 전제하는 지식의 대상을 계급투쟁을 전제하는 토픽
관념으로 변화시킨다. 지식의 대상이 토픽이다. 토픽은 이론과 이데올로기의
결합 구조이다. 지식의 대상은 일상 용어로 지식이다. 결국 지식의 구조는 이
론과 이데올로기의 결합구조이다. 알튀세르가 지식을 표현하는 용어인 토픽
(th e topic )은 개조, 지반변경 (ch an g eait de t err ain ; 영 ch an g e of t err ain ), 절
단 (coupu r e ) , 인식론적 절단 coupur e épist émologiqu e ; 영 epist emological
br eak )42), 계속되는 절단43), 토픽 순으로 변천한다.44) 대개 초반 용어는 이론과
이데올로기의 결합 구조가 불분명하지만 후반에 사용한 용어는 갈수록 결합구
조가 분명해진다.45) 본고에서는 알튀세르가 사용한 원용어에 근거해서 개조,
지반변경, 절단, 인식론적 절단, 계속되는 절단, 토픽을 사용하지만 그 의미는
항상 토픽과 같은 뜻이다. 본고는 알튀세르 사상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지식은 초반부터 후반까지 항상 이론과 이데올로기의 결합 구조를 표현한 것
으로 이해한다.
알튀세르의 초기사상에서 인식론적 절단46)은 이데올로기와 과학을 포섭하
는 고리의 측면이 있는 개념이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에서 절단한 과학에서
마르크스 과학 에 초점을 두었는지 절단 자체 에 관심을 두었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는 절단 후의 마르크스의 과학 자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
에서 절단한 과학에서 절단과정 자체 에 관심이 있었다. 지식론을 구체적인 역
사 속에 적용하면서 인식론적 절단 자체 를 대상으로 삼았을 뿐, 독자적으로
이데올로기만 또는 과학만을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다. 그가 자신의 지식론을
현실의 구체적인 특정 지식에 적용한 것들은 항상 순수한 형태의 이데올로기
도 아니고 순수한 형태의 과학도 아닌 양자의 결합 상태(토픽=절단)로 제시했
다. 알튀세르는 초기의 인식론적 절단이 한번의 절단으로 끝나고 이후에는 과
학 내부에서의 사소한 발전만 존재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을 교정하기 위해
서 계속되는 절단으로 바꾸었다. 그는 계속되는 절단도 인식론적 절단과 마찬
가지로 이데올로기없는 과학의 독립이라는 인상을 주자 토픽으로 바꾸었다. 토
픽은 절단이 절단 이후의 과학만 특권화시키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것과
달리 항상 이데올로기와 이론(=과학)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실을 지시하는 데
적합하다.
알튀세르 지식론이 초기부터 이데올로기와 이론의 토픽이라는 것은 스승
바슐라르(Ga ston Bach elard )와 캉기엠(Georg es Conguihem )47)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알튀세르는 바슐라르의 과학사에서 인식론적 장애와 단절을 배웠다.
인식론적 장애와 단절은 과학사에서 단절의 이전과 이후를 연결시켜 주는 개
념이다. 캉기엠은 과학사에서 과학발전에 중요한 이데올로기와 탈이데올로기가
접합된 상황을 지시하기 위해서 과학적 이데올로기(un e idéologies scientifique
) 라는 개념을 만들었다.48) 과학적 이데올로기(idéologies scientifiqu es )에서 과
학과 이데올로기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알튀세르가 사용한 개념과 바슐라
르, 캉기엠이 사용한 개념들이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공통점으로 이론과 이데
올로기의 결합 구조를 추출할 수 있다.
이렇게 후기의 토픽과 초 중기의 절단 등을 동일한 기본 구조를 가진 것으
로 파악한다는 것은 알튀세르 사상이 기본적으로 초기부터 완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 과학성의 징표를 계속 변화
시킨 것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알튀세르가 제시
한 마르크스주의 과학성의 기준은 구조 인과율, 분파적 과학(la scien ce
scis sionnnelle)과 갈등적 이론(la théorie conflictu elle) 그리고 계급투쟁에 대한
상수와 변이의 과학 등으로 다양하다. 이처럼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 과학성
의 징표를 변화시킨 것에 대한 평가는 결국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이 아니라거
나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의 징표를 잘 몰랐다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본고는 알튀세르의 견해를 토픽적으로 해석해서 이러한 견해를
부정하려고 한다. 본고가 보기에는 알튀세르의 지식론은 다양한 설명들을 통해
서 다양한 과학성의 변이를 보여 준 것이다.
이제 본고의 전개에 필요한 푸코의 입장을 정리해 보자. 푸코의 연구주제는
세 가지 전통적인 문제이다. 1) 학문적 지식을 매개로 드러나는 진리가 주체이
며 동시에 객체가 되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진리의 게임 에서 우리49)는 어떤
연관 관계에 있는가? 2) 이러한 기묘한 전략들과 권력관계를 통해 타자와 우
리가 맺고 있는 관계는 무엇인가? 3 ) 진리와 권력과 자기간의 상호관계는 무
엇인가? 그에 따르면 제1질문, 제2질문, 제3질문을 단계적으로 거친 후 다시
제1질문으로 되돌아간다.50) 결국 푸코의 연구주제는 진리(게임), 권력(관계), 주
체이다. 푸코는 이 중에서도 진리게임 문제를 제1질문으로 가장 중시하고 있
다. 이러한 푸코의 문제의식이 본고의 출발점이다. 본고는 푸코 사상에서 진리
게임론을 가장 중시한다.
푸코의 연구주제가 진리(게임), 권력(관계), 주체이라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자기의 배려- 성의 역사3 (84 ), 쾌락의 활용- 성의 역사2
(84)51), 논쟁, 정치 문제제기 (84 )52),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자기에의 배려
(84)53), 진리, 권력, 자기 (82.10.25.)54), 주체와 권력 (82)55), 정치와 이성
(79.10)56), 앎의 역사- 성의 역사1 (76), 감시와 처벌 (75 )등에서도 볼 수 있
다. 자기의 테크놀로지 (82.10)57)에서는 생산, 기호(=지식=진리게임), 권력(=권
력관계), 자기(=주체)로 생산을 하나 더 추가하고 있다. 이것들은 권력관계(생
산과 권력문제)58)/ 진리게임(기호문제)/ 주체(자기문제)로 재구성될 수 있다.
푸코의 연구주제에서 진리게임, 권력관계, 주체가 근본적이라는 것이 본고의
전제사항이다. 본고 지식론 연구는 이러한 푸코의 개념 축 중에서 권력관계와
진리게임을 알튀세르의 개념 축인 계급투쟁과 토픽으로 상호 코드 변환하면서
이해한다.
이하는 푸코의 주장을 본고가 이해한 방식이다. 이미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반복한다. 푸코는 모든 사회는 사회적 권력관
계로 구성되어 있다 와 모든 사회는 진리게임의 권력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는
것을 설정한다. 푸코는 사회적 권력관계 개념을 중기 이후에 사용하지만 푸코
사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초기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푸코는
진리게임이라는 용어를 후기부터 사용하지만 푸코 사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미 초기부터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두 가지 전제하에서 푸코 사상을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과 인간사회를 알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현재의 진리게임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이 사로잡힌 이 진리게임
들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 문제는 본고 2. 지식론 편 에서 다룬
다.
현재의 진리게임 문제는 현실 권력관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권력관계
(생권력(bio- power ), 사목권력(th e pa stor ship - power ), 통치기예(th e art of
g ov ernment ))와 진리게임(정신병리학, 정치 경제학, 통계학 등)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현재사로서 진리게임이 있다. 이것이 현재의 진리게임(= 진리게임/ 권력관
계 )이다. 이 문제는 본고 3. 지식과 현실 에서 다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분석한 현재의 진리게임을 억압을 최소화하는 새로
운 진리게임으로 변화시키는 실천을 하려고 한다. 이 실천의 문제가 자기에의
배려 문제이다. 이때 정복당한 지식의 복권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지식론의
진리게임(= 진리게임/ 권력관계/ 자기에의 배려 ) 전체이다. 이 문제는 4. 지식과
현실 그리고 실천 에서 다룬다.
위와 같은 해석은 다음 두 가지 전제에 따른 것이다. 전제1: 우리의 지식은
진리게임 내에서만 진리이다. 전제2: 우리는 진리게임을 벗어날 수 없다.59) (권
력관계를 벗어난 사회는 없다.) 결론: 푸코의 지식도 새로운 진리게임 내에 들
어간다(개별적인 혁명들은 기존의 권력관계를 새로운 권력관계로 변화시킨 것
이다). 결론은 전제1과 전제2의 진리게임론을 푸코 자신에게 적용한 것이다.
이 해석에서 전제1은 널리 알려진 해석이고, 전제2는 본고의 해석이다.
푸코의 견해에 따르면 진리게임과 진리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정
말 진리로 알고 있는 것은 곧 진리게임의 산물이다. 우리 모두의 지식이 진리
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푸코 자신도 진리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60)

1.4 . 토픽과 진리게임에서 진리의 전유

지식의 대상이 현실 대상을 어떻게 전유하느냐 61) 라는 말의 의미는 진리
를 어떻게 전유하느냐? 이다. 진리의 전유에는 지식의 대상이 현실대상을 전
제하고(유물론), 현실대상과 구별된다(명목론) 는 전제조건이 있다.
마르크스는 지식의 대상에 대한 현실 대상의 우위라는 테제를 통해서, 그
리고 두 번째 테제, 즉 현실대상과 지식의 대상의 구별에 대한 첫 번째 테제의
우위를 통해서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보다 확실하게 자신을 보호하였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최소한의 일반성, 즉 이 경우에는 유물론적인 테제들
을 획득할 수 있는데 이 테제들은 관념론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킴으로써
지식 생산의 구체적 과정들에 대한 연구를 위해 자유로운 공간을 열어 준다
. 62)
지식의 대상이 현실대상을 전유할 때 진리의 전유는 완벽하게 투명한 것이
아니다.
투명한 인식은 없다. 읽는 것이란 무엇인가? 프로이드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듣는 것,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즉 말하고 듣
는 것의 이러한 의미 는 말하고 듣는 순수성의 배후에서 제 2의 다른 담론, 즉
무의식의 담론이라는 심연을 드러내 주었다. 읽기라는 문제, 따라서 쓰기라는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사람은 스피노자였다. 그는 역사이론과 직접적인 것의
불투명이라는 철학을 제기했다. 63)
진리의 전유는 왜 불투명한가? 이 문제가 곧 본고의 중심 주제의 하나이다.
여기서는 간략히 요점을 보여주어 이후의 논의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일상용
어로 표현하면 배경 지식 덕분에 우리는 안다.64) 진리의 전유가 사실은 주어진
이데올로기에서 시발하는 전유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전유는 주어진 무의식 속
에서의 전유이고, 주어진 토픽에서의 전유이고, 주어진 진리게임에서의 전유이
다. 진리의 전유는 주어진 토픽밖과 주어진 진리게임밖을 전유할 수 없다. 이
러한 이유로 주어진 토픽밖과 주어진 진리게임밖은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진리의 전유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시(可視), 비가시(非可視), 간과(看過)를 이
해해야 한다.65) 이러한 현상의 설명 사례가 알튀세르의 자본을 읽자 에서 나
온다. 영국의 정치 경제학은 이윤을 발견했고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를 발견했
다. 영국의 정치 경제학은 이윤을 가시하였지만(=볼 수 있었지만), 잉여가치를
비가시하였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은 이윤을 가시하였지만 잉여가치를 간과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발견한 잉여가치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가시 하였지만 그
속의 착취를 비가시하였다. 마르크스 이전의 선행자는 잉여가치를 발견하였지
만 착취를 간과하였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를 통해서 착취를 파악하였다. 착
취를 간과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시각이 관련된 곳에서의 간과의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가 도달
해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우리는 우리가 지식에 대해서 갖고 있는 관념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며 직접적인 비전과 독해라는 거울신화를 폐기하고
지식을 생산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66)
우리는 주어진 역사적 토픽과 역사적 진리게임 속에서 진리를 전유하기 때
문에 주어진 토픽과 진리게임밖의 현실대상을 간과한다. 처음에 간과한 것을
이후에 파악하는 방식이 징후적(symptomale / symptomale) 독해이다.
마르크스의 제2의 독해 방법은 읽고 있는 원문 속에 감추어진 것을 폭로
하고, 최초의 원문에서 필연적인 부재로 나타난 별개의 원문에 원문을 관련짓
는 한에서 징후적 이라 부를 수 있는 방법이다. 과학은 그것이 이론적으로 취
약한 부분에 지극히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살아있는 것으로 되고 진보한다. 알
고 있는 것보다는 모르고 있는 것에 의지할 때 과학은 생명을 갖는다. 67)
우리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를 징후적으로 독해해 보면 마르크스가 발견한
것은 잉여가치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를 발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의 진정한 발견은 잉여가치를 통한 착취의 발견이다. 지식이 과학사에
서처럼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대상이 현실대상의 일부를 간과하는
현상이 있어야 한다. 지식은 무의식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징후적 독해를 통
해서 간과한 나머지를 계속 발견(=과학)하면서 발전한다. 알튀세르의 지식의
대상은 계속되는 인식론적 절단의 토픽이다. 지식론의 과제는 토픽과 진리게임
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이다.
다음에 전개될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가시, 비가시, 간과는 모두 이데
올로기가 작용한 것이다. 배경지식이라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보게 만든다.
동시에 이 이데올로기는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다.68) 주제는 이
복잡한 인식 현상을 다루는 것이 본고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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