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화와 노동] 제 211호 2004년 1월 2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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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선거로 드러난 노동자운동의 현실과 우리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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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민주노총 선거는, 민주노총의 향후 3년의 향방을 결정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선거는 이수호-이석
행 후보조(2번 진영)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들의 당선은 같은
후보조로 출마한 다른 네 명의 부위원장 후보의 당선과 함께 이루
어졌고, 경쟁하던 유덕상-전재환 후보조(1번 진영)의 후보는 한 명
도 당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어느 진영의 후보이냐'라는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기간 민주노총 내부에서 비정규직
사업을 진지하게 고민해왔고, 이후 비정규직 투쟁을 더욱 확산시
킬 고민을 가지고 있었던 '비정규직 후보'들이 모두 낙선했다. 그
리고 여성할당제를 통한 여성부위원장 선출 또한 여성노동자들의
조직화나 여성운동의 고민보다는 철저하게 양분된 선거구도의 영
향을 받았다.
사실 당장 눈에 보이는 선거 결과만을 두고 이번 선거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투쟁보다는 협상이나 타협을 통한 자기 이해의 확보를
선택했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상당히 한계적인 평가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조운동이 처한 위기 상황을 반
영하는 것이며, 더불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진정한 혁신이
없다면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운동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민주노총의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는 좀 더 깊은 숙고와 분석을 필요로 한다.
구조조정 이후, 노동자운동의 현실을 반영한 선거결과
이번 선거결과는 직접적으로는 정파간의 대립구도 속에서 철저한
조직선거로 진행된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
이 '부동표'가 어디에 쏠렸는지, 정파간의 연합이 어떠한 효과를
불러왔는지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결과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남한 노동자
운동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한다. 구조조정 이후 전체 노
동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위기의식은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에
서 기인한다. 노동의 불안정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비
정규직은 말할 나위 없고, 정규직조차 비정규직에 대해 '상대적인'
안정감만을 가질 뿐, 실질임금의 하락, 노동강도의 강화, 고용의
불안정성 등으로 인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응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수세적인 타협으로 마무리되는 패배의 과
정을 겪으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짤리기 전에
많이 벌자"는 태도가 확산되었고, 비정규직을 상대적인 고용안정
을 위한 방패막이로 인식하는 경향이 늘어났다. 일부 대기업 노조
의 어용화도 이런 효과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지만, 이들만이 문제
가 아니다. 이른바 '민주노조' 안에도 이러한 정규직 조합원들의
태도는 노사-노정 관계에 대한 노조의 행보에 분명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번 선거에 출마한 양진영 모두가 자유롭
지 못하다. 상대적으로 전투적인 입장을 밝힌 1번 진영조차도 2기
지도부 이후 3기 지도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
자들의 변화에 그대로 휩쓸려왔다. 1번 진영의 후보들조차 이제까
지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상황에서 여전히 이
들에 의존한 '힘있는 민주노총'이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었을 것
이다.
결국 민주노총 2기와 3기 지도부를 구성했던 1번 진영의 기간의
투쟁과 활동이 정규직이던 비정규직이던 전체 노동자들이 처한 위
기를 극복하는 노동운동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
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이 상황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드러
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이 불만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중심성을 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
것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과잉대표'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
자들의 실리적인 선택의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과정에서 좀 더 '전투적'임을 자임하던 1번 진영조차 현재의 노동
자들의 위기가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가속화시키면서 이를 통해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를 꾀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혁신된 투
쟁이 없이는 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지 않았다. 선거 과정
에서 그 누구도 지금의 노동자운동이 처해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으며, 그 실내용으로 노동자
들을 조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민주노총은 그간 위기 시마다 해
당 지도부를 교체하는 식으로 사태를 마무리하곤 하였다. 1998년
노사정합의 때도 그러하였고, 2002년 발전총파업 철회 때도 그러
하였다. 그럴 때마다 민주노조운동은 위기의 담론에 휩싸였지만,
그 위기를 근본적으로 전화할 수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적 이
념과 사상의 재구축, 새로운 주체형성과 같은 근본적인 반성과 혁
신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 선거결과는 2003년 하반기에 분출한 노동자들의 극렬
한 투쟁이 노동자운동 전체 방향에 의미있는 영향을 주지 못했음
을 보여주었다. 2003년 하반기 투쟁이, 민주노총 차원의 정세인식
에 근거해서 전체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진행되었다기 보다는 '열사'
를 낳은 지역과 연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11월9일 노동자대회 이후 이
투쟁을 전국적, 전계급적 투쟁으로 도저히 더 이상 밀고 나가지
못했다. 정권과 언론의 공세를 받자 곧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 투쟁은 "우리도 아직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개별 투쟁들은 모두 '적
절한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각각의 투쟁에 가시적인 소득이
있었다는 자평들이 있지만, 하반기 정세에서 계급역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투쟁들은 정리
되었다.
가혹한 노동탄압에 시달릴뿐더러, 대규모 노조처럼 이를 혼자 힘
으로는 분쇄할 수 없는 노조,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은 '열사'들을
낳으면서까지 전개되었으나 이들 투쟁에 연대한 단위들은 매우 제
한적이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남발'을 비판한 2번 진영의 주장
이 오히려 총파업에 결합하지 않았던 노조에 더 호소력이 있었다
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총파업에 동참할 수 없
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의에 부담을 가졌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새로운 노동체제의 구축은 성공할 것인가?
노무현 정권은 2003년 한해동안 좌충우돌하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세력에게는 탄압뿐이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왔다. 2003년
하반기 투쟁에 있어서도 이 투쟁이 전국적인 연대투쟁으로 전개되
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같은 내용의 경고를 계속했다. 이번 민주
노총 선거가 이러한 정권의 태도의 효과 아래 있었다는 것도 주목
해야한다.
정권은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새로운 노동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
동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까지 신자유주의
자들이 추진해왔던 노동정책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고 있다. 이제까지 신자유주의자들은 개별적 노동관계제도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촉진하면서 집단적 노동관계의 제도화를
완성해왔다. 노무현 정권은 집단적 노동관계에 있어서 노동운동과
정권, 노동운동과 자본, 즉 노사정 차원의 새로운 제도화라는 단계
로 나가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노동조합 상층에 사회적
합의를 강제하는 한편 전투적인 현장 투쟁을 더욱 제어하는 방향
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노사관계 선전화방안"은 이러한
맥락에서 집단적 노동관계에 대해서도 '글로벌스탠더드'를 적용,
제도의 경직성을 줄이고 유연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사회적
합의'를 강제하는 명분은 '전국민적' 관심사인 실업/고용 대책에 대
한 합의이다.
정부는 구조조정 이후 실리주의에 경도된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비롯한 노조운동 상층을 코포러티즘적으로 포섭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직된 노동자운동을 순치하고, 터져나
오는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을 분쇄하면서 노동의 불안정화를 더
욱 밀고 나갈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로 인해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수호-이석행 당선자 진영
은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약간의 단서를 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기정 사실화하고 있으며,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노
동운동도 적극적으로 기여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정부의 실업/고용 대책이라는 것은 노조에는 고용 증진을
위한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일련의 양보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더구나 정부의 대책 자체도 노동의 불안정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안일 것이 명확한 상황이다. 정부는 또한 실업/고용 대책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사안으로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을 포섭한 후 노사
정위 차원의 합의로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낸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굳이 코포러티즘 반대의
입장까지도 갖지 않아도 실업/고용 대책을 매개로 한 노사정위 참
가가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의 구상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운동의 주류는 새
로운 차원에서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에 대한 정부의
사회적 관리망의 일부로 포섭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금
융세계화 속에서 국내 생산기지의 해외이전, 노동의 불안정화 증
가로 인한 노동자들의 삶의 위기를 이러한 제도화로 계속 억압하
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노
동자 운동을 이러한 관리에 포섭하려는 노력은 쉽게 성공할 수 없
다. 노동자운동이 내부의 분열과 분할을 심화하고 민주노총의 대
표성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이러한 포섭을 거부하고, 억압 불가능
한 삶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자주적인 투쟁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권이다.
노동자운동의 사회운동적 개조와 새로운 노동자운동 주체형성으로
매진하자!
이번 선거결과는 남한노동자운동의 현실에 대해 발본적인 반성을
할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남
한노동자운동의 주력을 형성해왔던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과 조
합원들 사이에 퍼지던 실리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에
영합해온 결과는 타협주의의 확산으로 드러나고 있다.
구조조정 이후 노동자운동의 대응이 현재의 결과에 이르게된 과정
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두 가지 방향에서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시
작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한다. 우선 여전히 민주노총을 중심으
로 하는 기존의 노동자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방향을 도출해야한
다. 또한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
해야한다.
구조조정 이후 현장에 만연한 실리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다시 중
요한 과제다. 대기업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운동의 제도화
를 통해 노조운동이 국가에 포섭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반경향
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개별 노조의 실리주의에 영합
하거나 이의 확대판인 정권의 합의주의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원칙을 견지한 가운데 노동자운동을 개조할 수 있는 투쟁
을 만들어가야 한다. '상반기 임단협과 시기집중 파업 - 하반기
제도개혁 투쟁'이라는 고착화된 싸이클을 극복하는 문제는 그 출
발점이다. 이는 단순히 싸이클을 바꾸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운동이 노동의 권리를 자신들만의 갇힌 권리가 아닌,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빈곤, 실업, 배제의 문제와 연관된 보편적
인 권리로 쟁취할 수 있는 투쟁의 요구와 방식을 해명하고, 받아
안아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노동자운동에 새로운 주체형성과 동시에 진행되
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효과로서 노동
자 대중의 불안정화에 주목하고 여성/이주/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
등 불안정노동자들이 새로운 주체로 형성되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민주노총 선거를 거치면서 이러한 불안정노동자 운동이 가지는 정
세적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도 작년에 이어 수많은 투쟁사안이 우리의 눈앞에 놓여
져 있다. 올해 말로 협상시효가 다가오는 WTO 개방화반대투쟁,
경제특구지역 설치로 인한 노동권 생활권 파괴, 노사간계선진화방
안이란 탈을 쓰고 나타난 노사관계로드맵과 비정규보호방안 등의
노동법개악저지투쟁, 카드사 유동성위기와 제조업 생산기지 해외
이전과 매각, 철도 등 공공부문도 대규모의 비정규직 도입과 외주
화를 발표하고 있어, 그 어느 한해보다도 강도높은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구조조정 대응과정에서 계
속해서 패배해온 남한 노동자운동이 향후 합의주의와 제조업공동
화 등의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밀려 더욱더 고용과 임금문제 등에
방어적인 투쟁의 위치에 몰릴 것임이 자명하다. 이미 은행과 제조
업 일부에서는 노조의 동의 하에 임금피크제가 시행되고 있어 노
동자운동에서 노동유연화를 기업별로 수용하는 곳도 여러 곳 된
다. 이렇게 고립분산적으로 투쟁을 전개하고, 방어적인 투쟁을 전
개한다면 노동자운동은 혁신은 커녕, 그 기회마저 잃어버려 계속
적인 패배를 맞이하던가 정권과 자본에 관리되는 노동자운동이 진
행될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 노동자투쟁의 방향은 노동자운동의 고립분산성을
극복하면서도 노동자운동의 사상이념의 혁신과 노동자운동의 새로
운 주체를 발굴하여 노동자운동이 새로운 변혁적 토양을 일굴 수
있는 출발점에 다시 서야 한다. 올해 투쟁은 이 과정에 위치 지워
져야 한다. 구조적 경제위기 시에 노동자운동이 방어적 투쟁과 실
리적 태도를 일관한다면 일반적으로 실패할 수 없다는 교훈을 되
새겨야 한다. 이것은 금융세계화로 인한 세계적 경향임과 동시에
외환위기 이후 겪어온 남한 노동자운동의 계속적인 실패에서도 일
맥상통한다. 따라서 현재 투쟁의 승패의 갈림길은 준비된 파업을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정세를 명확히 인식하고 변혁적
전망을 갖는 노동자운동으로 재출발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음을 인
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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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선거로 드러난 노동자운동의 현실과 우리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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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민주노총 선거는, 민주노총의 향후 3년의 향방을 결정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선거는 이수호-이석
행 후보조(2번 진영)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들의 당선은 같은
후보조로 출마한 다른 네 명의 부위원장 후보의 당선과 함께 이루
어졌고, 경쟁하던 유덕상-전재환 후보조(1번 진영)의 후보는 한 명
도 당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어느 진영의 후보이냐'라는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기간 민주노총 내부에서 비정규직
사업을 진지하게 고민해왔고, 이후 비정규직 투쟁을 더욱 확산시
킬 고민을 가지고 있었던 '비정규직 후보'들이 모두 낙선했다. 그
리고 여성할당제를 통한 여성부위원장 선출 또한 여성노동자들의
조직화나 여성운동의 고민보다는 철저하게 양분된 선거구도의 영
향을 받았다.
사실 당장 눈에 보이는 선거 결과만을 두고 이번 선거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투쟁보다는 협상이나 타협을 통한 자기 이해의 확보를
선택했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상당히 한계적인 평가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조운동이 처한 위기 상황을 반
영하는 것이며, 더불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진정한 혁신이
없다면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운동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민주노총의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는 좀 더 깊은 숙고와 분석을 필요로 한다.
구조조정 이후, 노동자운동의 현실을 반영한 선거결과
이번 선거결과는 직접적으로는 정파간의 대립구도 속에서 철저한
조직선거로 진행된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
이 '부동표'가 어디에 쏠렸는지, 정파간의 연합이 어떠한 효과를
불러왔는지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결과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남한 노동자
운동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한다. 구조조정 이후 전체 노
동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위기의식은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에
서 기인한다. 노동의 불안정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비
정규직은 말할 나위 없고, 정규직조차 비정규직에 대해 '상대적인'
안정감만을 가질 뿐, 실질임금의 하락, 노동강도의 강화, 고용의
불안정성 등으로 인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응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수세적인 타협으로 마무리되는 패배의 과
정을 겪으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짤리기 전에
많이 벌자"는 태도가 확산되었고, 비정규직을 상대적인 고용안정
을 위한 방패막이로 인식하는 경향이 늘어났다. 일부 대기업 노조
의 어용화도 이런 효과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지만, 이들만이 문제
가 아니다. 이른바 '민주노조' 안에도 이러한 정규직 조합원들의
태도는 노사-노정 관계에 대한 노조의 행보에 분명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번 선거에 출마한 양진영 모두가 자유롭
지 못하다. 상대적으로 전투적인 입장을 밝힌 1번 진영조차도 2기
지도부 이후 3기 지도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
자들의 변화에 그대로 휩쓸려왔다. 1번 진영의 후보들조차 이제까
지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상황에서 여전히 이
들에 의존한 '힘있는 민주노총'이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었을 것
이다.
결국 민주노총 2기와 3기 지도부를 구성했던 1번 진영의 기간의
투쟁과 활동이 정규직이던 비정규직이던 전체 노동자들이 처한 위
기를 극복하는 노동운동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
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이 상황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드러
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이 불만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중심성을 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
것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과잉대표'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
자들의 실리적인 선택의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과정에서 좀 더 '전투적'임을 자임하던 1번 진영조차 현재의 노동
자들의 위기가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가속화시키면서 이를 통해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를 꾀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혁신된 투
쟁이 없이는 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지 않았다. 선거 과정
에서 그 누구도 지금의 노동자운동이 처해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으며, 그 실내용으로 노동자
들을 조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민주노총은 그간 위기 시마다 해
당 지도부를 교체하는 식으로 사태를 마무리하곤 하였다. 1998년
노사정합의 때도 그러하였고, 2002년 발전총파업 철회 때도 그러
하였다. 그럴 때마다 민주노조운동은 위기의 담론에 휩싸였지만,
그 위기를 근본적으로 전화할 수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적 이
념과 사상의 재구축, 새로운 주체형성과 같은 근본적인 반성과 혁
신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 선거결과는 2003년 하반기에 분출한 노동자들의 극렬
한 투쟁이 노동자운동 전체 방향에 의미있는 영향을 주지 못했음
을 보여주었다. 2003년 하반기 투쟁이, 민주노총 차원의 정세인식
에 근거해서 전체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진행되었다기 보다는 '열사'
를 낳은 지역과 연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11월9일 노동자대회 이후 이
투쟁을 전국적, 전계급적 투쟁으로 도저히 더 이상 밀고 나가지
못했다. 정권과 언론의 공세를 받자 곧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 투쟁은 "우리도 아직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개별 투쟁들은 모두 '적
절한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각각의 투쟁에 가시적인 소득이
있었다는 자평들이 있지만, 하반기 정세에서 계급역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투쟁들은 정리
되었다.
가혹한 노동탄압에 시달릴뿐더러, 대규모 노조처럼 이를 혼자 힘
으로는 분쇄할 수 없는 노조,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은 '열사'들을
낳으면서까지 전개되었으나 이들 투쟁에 연대한 단위들은 매우 제
한적이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남발'을 비판한 2번 진영의 주장
이 오히려 총파업에 결합하지 않았던 노조에 더 호소력이 있었다
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총파업에 동참할 수 없
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의에 부담을 가졌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새로운 노동체제의 구축은 성공할 것인가?
노무현 정권은 2003년 한해동안 좌충우돌하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세력에게는 탄압뿐이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왔다. 2003년
하반기 투쟁에 있어서도 이 투쟁이 전국적인 연대투쟁으로 전개되
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같은 내용의 경고를 계속했다. 이번 민주
노총 선거가 이러한 정권의 태도의 효과 아래 있었다는 것도 주목
해야한다.
정권은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새로운 노동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
동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까지 신자유주의
자들이 추진해왔던 노동정책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고 있다. 이제까지 신자유주의자들은 개별적 노동관계제도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촉진하면서 집단적 노동관계의 제도화를
완성해왔다. 노무현 정권은 집단적 노동관계에 있어서 노동운동과
정권, 노동운동과 자본, 즉 노사정 차원의 새로운 제도화라는 단계
로 나가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노동조합 상층에 사회적
합의를 강제하는 한편 전투적인 현장 투쟁을 더욱 제어하는 방향
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노사관계 선전화방안"은 이러한
맥락에서 집단적 노동관계에 대해서도 '글로벌스탠더드'를 적용,
제도의 경직성을 줄이고 유연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사회적
합의'를 강제하는 명분은 '전국민적' 관심사인 실업/고용 대책에 대
한 합의이다.
정부는 구조조정 이후 실리주의에 경도된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비롯한 노조운동 상층을 코포러티즘적으로 포섭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직된 노동자운동을 순치하고, 터져나
오는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을 분쇄하면서 노동의 불안정화를 더
욱 밀고 나갈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로 인해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수호-이석행 당선자 진영
은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약간의 단서를 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기정 사실화하고 있으며,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노
동운동도 적극적으로 기여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정부의 실업/고용 대책이라는 것은 노조에는 고용 증진을
위한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일련의 양보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더구나 정부의 대책 자체도 노동의 불안정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안일 것이 명확한 상황이다. 정부는 또한 실업/고용 대책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사안으로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을 포섭한 후 노사
정위 차원의 합의로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낸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굳이 코포러티즘 반대의
입장까지도 갖지 않아도 실업/고용 대책을 매개로 한 노사정위 참
가가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의 구상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운동의 주류는 새
로운 차원에서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에 대한 정부의
사회적 관리망의 일부로 포섭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금
융세계화 속에서 국내 생산기지의 해외이전, 노동의 불안정화 증
가로 인한 노동자들의 삶의 위기를 이러한 제도화로 계속 억압하
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노
동자 운동을 이러한 관리에 포섭하려는 노력은 쉽게 성공할 수 없
다. 노동자운동이 내부의 분열과 분할을 심화하고 민주노총의 대
표성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이러한 포섭을 거부하고, 억압 불가능
한 삶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자주적인 투쟁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권이다.
노동자운동의 사회운동적 개조와 새로운 노동자운동 주체형성으로
매진하자!
이번 선거결과는 남한노동자운동의 현실에 대해 발본적인 반성을
할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남
한노동자운동의 주력을 형성해왔던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과 조
합원들 사이에 퍼지던 실리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에
영합해온 결과는 타협주의의 확산으로 드러나고 있다.
구조조정 이후 노동자운동의 대응이 현재의 결과에 이르게된 과정
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두 가지 방향에서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시
작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한다. 우선 여전히 민주노총을 중심으
로 하는 기존의 노동자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방향을 도출해야한
다. 또한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
해야한다.
구조조정 이후 현장에 만연한 실리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다시 중
요한 과제다. 대기업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운동의 제도화
를 통해 노조운동이 국가에 포섭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반경향
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개별 노조의 실리주의에 영합
하거나 이의 확대판인 정권의 합의주의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원칙을 견지한 가운데 노동자운동을 개조할 수 있는 투쟁
을 만들어가야 한다. '상반기 임단협과 시기집중 파업 - 하반기
제도개혁 투쟁'이라는 고착화된 싸이클을 극복하는 문제는 그 출
발점이다. 이는 단순히 싸이클을 바꾸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운동이 노동의 권리를 자신들만의 갇힌 권리가 아닌,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빈곤, 실업, 배제의 문제와 연관된 보편적
인 권리로 쟁취할 수 있는 투쟁의 요구와 방식을 해명하고, 받아
안아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노동자운동에 새로운 주체형성과 동시에 진행되
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효과로서 노동
자 대중의 불안정화에 주목하고 여성/이주/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
등 불안정노동자들이 새로운 주체로 형성되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민주노총 선거를 거치면서 이러한 불안정노동자 운동이 가지는 정
세적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도 작년에 이어 수많은 투쟁사안이 우리의 눈앞에 놓여
져 있다. 올해 말로 협상시효가 다가오는 WTO 개방화반대투쟁,
경제특구지역 설치로 인한 노동권 생활권 파괴, 노사간계선진화방
안이란 탈을 쓰고 나타난 노사관계로드맵과 비정규보호방안 등의
노동법개악저지투쟁, 카드사 유동성위기와 제조업 생산기지 해외
이전과 매각, 철도 등 공공부문도 대규모의 비정규직 도입과 외주
화를 발표하고 있어, 그 어느 한해보다도 강도높은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구조조정 대응과정에서 계
속해서 패배해온 남한 노동자운동이 향후 합의주의와 제조업공동
화 등의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밀려 더욱더 고용과 임금문제 등에
방어적인 투쟁의 위치에 몰릴 것임이 자명하다. 이미 은행과 제조
업 일부에서는 노조의 동의 하에 임금피크제가 시행되고 있어 노
동자운동에서 노동유연화를 기업별로 수용하는 곳도 여러 곳 된
다. 이렇게 고립분산적으로 투쟁을 전개하고, 방어적인 투쟁을 전
개한다면 노동자운동은 혁신은 커녕, 그 기회마저 잃어버려 계속
적인 패배를 맞이하던가 정권과 자본에 관리되는 노동자운동이 진
행될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 노동자투쟁의 방향은 노동자운동의 고립분산성을
극복하면서도 노동자운동의 사상이념의 혁신과 노동자운동의 새로
운 주체를 발굴하여 노동자운동이 새로운 변혁적 토양을 일굴 수
있는 출발점에 다시 서야 한다. 올해 투쟁은 이 과정에 위치 지워
져야 한다. 구조적 경제위기 시에 노동자운동이 방어적 투쟁과 실
리적 태도를 일관한다면 일반적으로 실패할 수 없다는 교훈을 되
새겨야 한다. 이것은 금융세계화로 인한 세계적 경향임과 동시에
외환위기 이후 겪어온 남한 노동자운동의 계속적인 실패에서도 일
맥상통한다. 따라서 현재 투쟁의 승패의 갈림길은 준비된 파업을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정세를 명확히 인식하고 변혁적
전망을 갖는 노동자운동으로 재출발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음을 인
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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