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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대중정당론자가 본 현장조직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현장연대 2003.08.08 17:19 조회 수 : 1437 추천:58

(4)현장 활동가 양성

현장 활동가 양성은 한마디로 '정치총파업을 준비하는 개미군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현장 활동가를 양성하는 것은 일정한 차이를 갖는 두 가지 작업의 결합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주력을 이루고 있는 제조업과 공공부문의 전략사업장들 속에서 현장 활동가들을 재형성해 내는 것이다. 또 하나는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중소영세사업장들과 노동운동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는 다양한 산업의 현장들 속에서 현장 활동가들을 새롭게 발굴 육성해 내는 것이다.

제조업과 공공부문의 전략사업장들 속에서 현장 활동가들을 재형성하는 문제부터 먼저 정리해 보자. 제조업과 공공부문의 전략사업장들에는 이미 많은 수의 현장 활동가들이 있지만, 정치총파업을 준비해 나가려면 이들을 새로운 운동의 기치로 재형성해 내야 한다.
전략사업장들에는 90년대 초반까지 노동계급 대중운동의 전진 속에 많은 수의 현장 활동가들이 배출되었고, 이들은 지금까지도 현장 활동가들의 주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1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이들 활동가들의 대부분은 의욕과 열정, 자신감과 활력을 잃어버린 상태다. 의식의 측면에서도 초기의 건강성을 상실했다. 노동해방의 정신은 기억 저편에서 가물거릴 뿐이고, 계급적 단결은 구호로만 남아 있다. 위험하지 않은 한계 속에서만 전투적이며, 명망가들의 패권을 중심으로 한 분파주의에 깊게 물들어 있다. 이미 이들을 근거로 정치총파업을 준비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전략사업장들에서 현장 활동가들을 재형성해 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노동해방과 계급적 단결의 정신, 전투적이고 민주적인 기풍'을 기치로 '내면적인 확신에 근거한 역동적인 자발성'을 갖춘 새로운 세대의 현장 활동가들을 대규모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라고 하는 것은 나이가 젊거나 활동경력이 짧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87년 대투쟁이 만들어 낸 힘에 안주하며 그것을 서서히 까먹고 살아온 '현 세대'의 현장 활동가들과 달리, 정치총파업을 준비하는 헌신적인 실천으로 노동계급 대중운동의 새로운 성장 발전의 시대를 열어가는 현장 활동가들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세대'인 것이다.
전략사업장들에서 새로운 세대의 현장 활동가들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오랜 세월 활동해 온 고참 활동가들과 최근에 노동운동에 뛰어든 신참 활동가들을 노동해방 계급단결 전투성 민주성의 기치 아래 새롭게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오랜 경험을 가진 고참 활동가들은 풍부한 활동능력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지쳐 있고 전망을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들에겐 운동의 전망을 다시 세워 냄으로써 내면적인 자신감과 활력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럴 때 희미해져 버린 의식의 건강성도 되찾아 낼 수 있다. 새롭게 운동에 뛰어든 신참 활동가들은 의욕과 활기가 넘치지만 이렇다 할 활동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운동에 대한 인식수준이 낮으며 잘못된 길로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약점을 갖고 있다. 이들에겐 노동계급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과 실질적인 활동능력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양자를 올바로 결합시켜 내는 것은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고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세대 현장 활동가들을 형성시키는 지름길이다.
전략사업장들에서 새로운 세대의 현장 활동가들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또한 해당 사업장 현장운동과 긴밀히 결합하는 사회주의 활동가들에 의해 보다 신속하고 강고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급 대중운동과 현장 활동의 방향에 대한 풍부하고 정확한 관점, 조직 작업에 요구되는 헌신성, 교육 능력, 해당 사업장 현장 활동가들과의 친화력 등을 두루 갖춘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전략사업장들에서 새로운 세대의 현장 활동가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젊은 사회주의 활동가들 다수가 각 사업장 현장운동에 새롭게 긴밀히 결합해 들어가야 한다.
한편 전략사업장들에서 새로운 세대의 현장 활동가들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은 사내하청 계약직 임시직 등 그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속에서 새로운 활동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작업을 주요한 부분으로 포함해야 한다. 전략사업장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규직 신규 입사자가 거의 없어짐으로 인해 신참 활동가 자체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그 경우 대부분은 신규 입사자의 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사업장들일수록 비정규직 노동자들 속에서 신참 활동가들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은 더욱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전략사업장들에서 새로운 세대의 현장 활동가들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기존 현장조직들의 재편으로 연결될 것이다. 계급적 단결에 취약할 뿐 아니라 심지어 선거용 사조직으로 전락해 버린 지금의 현장조직들은 너무 낡았다.
새로운 유형의 현장 활동가 조직은 노동해방 계급단결 전투성 민주성의 기치를 선명하게 다시 내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 조직이라야 할 것이다. 특히 그러한 기치를 진실되게 지켜가려는 치열한 자기비판이 살아있는 조직이라야 하며, 구성원 개개인들이 내면적인 확신 속에 역동적인 자발성을 뿜어내는 조직이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장 활동가 조직의 재편은 단순히 조직의 형식만을 바꾸는 과정일 수 없다. 몇몇 사업장에서 폭로된 바와 같이 현장 활동가들을 길들여 나가는 자본의 세련된 노무관리가 일반화된 지 오래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럴싸한 운동적 기치를 내걸지만 실제로는 노사협조주의와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장 활동가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것은 이미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현장 활동가 조직의 재편은 그 전제로서 기존의 현장조직들 내부에 은밀하게 퍼져 있는 노사협조주의와 관료주의에 대한 치열한 자기정화의 노력들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새로운 유형의 현장 활동가 조직은 (스스로 내세우는 운동적 기치를 진실되게 실천할 수 있는 자기정화의 노력들을 토대로 하여) 노동해방 계급단결 전투성 민주성의 기치를 선명하게 내세우고 실천하는 모든 현장 활동가들을 하나의 틀로 재조직해 내는 것이어야 한다. 사업장 단위에서부터 기존 현장조직들의 질서를 해체하거나 혹은 고립분산을 극복하여 현장 활동가들을 하나의 틀로 새롭게 묶어세워야 한다. 정규직 활동가들만의 조직이 아니라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활동가들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유형의 현장 활동가 조직은 그렇게 사업장 단위에서 이루어진 통일을 기초로 지역 차원의 단일조직, 나아가 전국 차원의 단일조직으로 발전해 나감으로써 계급적 단결의 원리를 조직형식으로도 구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단일조직으로의 발전과정은 또한 중소영세사업장 및 다양한 산업의 현장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 현장 활동가들과 하나의 틀로 결집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현장 활동가 양성은 전략사업장들 속에서 현장 활동가들을 재형성하는 문제로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의 노동계급운동에서 이들 전략사업장들이 갖는 중요성은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들 전략사업장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의 수가 전체 노동자의 10%도 채 안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수백만 노동대중이 참여하는 정치총파업을 준비해 나가려면, 전략사업장들을 넘어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중소영세사업장들과 노동운동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는 다양한 산업의 현장들 속에서 현장 활동가들을 새롭게 발굴 육성해 나가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미 한국 노동계급의 보편적인 존재형태로 되어버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1천3백만 노동자 전체를 노동운동의 주체로 묶어 나가려는, 다시 말해서 1천3백만 노동자가 일하는 모든 일터를 노동운동이 살아숨쉬는 현장으로 개척해 나가려는 대담한 도전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전국적으로 엄청난 숫자에 이르는 이러한 사업장들 속에서 현장 활동가들을 발굴 육성해 나가는 것은 마치 바닷가에 널린 모래알들을 한줌씩 주워 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일이다. 몇몇의 사업장에서 일정한 성과가 난다 하더라도 대세의 흐름을 잡아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치밀한 계획을 갖고 규모 있게 밀어붙인다면 어느 정도 유의미한 성과는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업장들 속에서 다수의 현장 활동가들을 발굴 육성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당원 대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터에서 현장 활동가로 거듭나도록 활동방향을 제시하고 교육 단련시켜 나가는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에는 전략사업장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다수 존재할 것이다. 학생운동 경험자로서 단순 지지 수준으로 당에 가입한 사람들, 선거투쟁이나 활발한 대중정치활동의 성과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같이 정치적인 경로로 조직된 당원들의 경우엔 특히 그러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당원들부터 현장 활동가로 육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현장 활동가로 성장해 나가는 당원들이 자기 현장에서 동료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이러저러한 투쟁들을 벌이고 그로 인해 탄압에 직면하게 될 때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조직력으로 집중 지원을 펼친다면 아마도 백전백승의 성과를 거둘 것이다. 그러한 성과적인 조직화와 투쟁의 경험들을 축적하고 일반화해 감으로써,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척박한 사업장들 속에서의 현장 활동가 육성에 대한 풍부한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5) 민주노조운동의 총체적 혁신

정치총파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총동원해 냄으로써 투쟁역량의 중심대오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협조주의 개량주의가 대세를 장악하고 관료주의에 깊이 찌들어 있는 지금의 민주노조운동을 총체적으로 혁신해 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을 총체적으로 혁신해 내는 것은 '전략사업장 노조 혁신'과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 그리고 그에 근거한 '민주노총 혁신'이 핵심 관건이다.

'전략사업장 노조 혁신'의 문제부터 정리해 보자.
제조업 및 공공부문의 전략사업장들은 한국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사업장들이다. 또한 이들 전략사업장의 노동조합들은 민주노조운동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90년대 초반까지는 87년 대파업으로 탄생한 다수의 중소규모 사업장 노동조합들이 중심이 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전략사업장 노동조합들 이상으로 민주노조운동을 주도하였으나, 90년대 중반 이후 이들 중소규모 사업장의 노조운동이 현격하게 위축되면서 전략사업장 노동조합들이 민주노총의 주력으로 역할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은 대단히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장 활동가들의 다수가 협조주의 개량주의에 넘어가 있는 점을 반영하여 노동조합 간부들 또한 협조주의 개량주의 흐름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관료주의 기풍이 만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략사업장 노동조합의 대부분이 계급적 단결을 회피하며 자기 조합원만으로 시야를 좁히고 있는데, 정작 자기 조합원의 요구마저도 '치열한 투쟁으로 쟁취해 내야 하는 절실한 요구들'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해진 룰에 따라 시늉만 내는' 투쟁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노골적인 노사협조주의 내지 어용세력이 집행부를 장악하는 일도 자주 나타나는데, 민주노조운동 역사에 한 획을 그어왔다는 현대중공업 서울지하철 한국통신 같은 사업장마저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 이제 노조 간부들이나 현장 활동가들의 문제를 넘어서서 전략사업장의 조합원들 자체가 개인주의화되고 보수화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사태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의 퇴행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게 아니냐"는 주장마저 제기되곤 한다.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이 퇴행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조합원들 자체가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 '개량화' 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의 혁신은 난망한 일이라는 것이다. 만일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의 퇴행이 조합원들의 '개량화'로 인한 것이라면, 아무리 현장 활동가들을 재형성해 낸다 하더라도 새로운 희망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현장 활동가들을 재형성해 낸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의 퇴행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담고 있긴 하지만, 사태의 원인을 잘못 이해한 것이며 실천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만일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의 혁신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가능한데도 올바른 관점을 갖지 못해 현실화해내지 못한다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노동계급 대중운동의 전진에 있어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은 말 그대로 '전략사업장'으로서 그 실천력과 파급력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사업장 노동조합들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총동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정치총파업을 현실화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지점인 것이다.

오늘날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이 심각한 중증에 걸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그 증상이 활동가들의 퇴행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 자체가 개인주의에 깊이 빠져들고 보수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략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의 개인주의화 및 보수화는 결코 '개량화'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물론 전략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의 임금 및 복지 수준은 한국의 평균적인 노동자들에 비해 상당히 높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교하자면 두세 배를 넘어서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인 비교일 뿐이며, 전략사업장 노조 조합원들 또한 투쟁을 잊어버려도 좋을 만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1년에 수십명씩 산재사망자가 발생하는 조선이나 철도 같은 업종은 말할 것도 없고, 위험 작업이 별로 없는 현대자동차 같은 사업장에서도 매년 과로사로 10여명이 죽어 나간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임금 수준도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미래를 여유 있게 대비할 수 있는 정도가 결코 되지 못한다. 엄청난 교육비와 집값, 한심한 사회복지 시스템은 '상대적인 고임금'을 초라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이런 것이다. "전략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조차 여전히 힘겨운 생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보다도 절반 이하의 생활을 강요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초과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말인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오해와 달리, 전략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은 결코 '배부른 노동귀족'이 아니다. 이런 오해들이 널리 퍼지게 된 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차별과 초과착취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 속에 교묘하게 숨어든 자본의 여론조작이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전략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의 정당한 요구와 투쟁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전략사업장 노조의 퇴행을 가속화하려는 자본의 치밀한 대응전략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전략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이 개인주의화되고 보수화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의 역사 속에서 조합원들의 절실한 요구가 분출되었던 몇 차례의 결정적인 투쟁들이 상급단체를 포함한 노조 지도부의 배신으로 잇따라 패배하면서, 노조운동의 진실성에 대한 실망이 대중화되고, 이로 인해 노조운동 속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더 이상 찾으려 하지 않는 심리상태가 대중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오랜 시간에 걸쳐 성공적으로 정착된 자본의 세련된 노무관리 체계가 노조 간부들과 현장 활동가들을 타락시키거나 고립시키고 조합원들에게 '살아남기 위한 무한경쟁과 충성'을 철저하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전개는 최근 몇 년 동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면서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일반화되었다. '정리해고 저지' '구조조정 분쇄' 투쟁이 노동조합 지도부들의 우유부단과 심지어 배신 끝에 잇따라 패배하자 조합원들 마음속에는 "정리해고의 칼날이 내 목을 자르겠다고 달려들 때 노동조합이 내 일자리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깊게 자리 잡혔다. 고용에 대한 항상적인 불안감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 쫓기게 되고,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지 않기 위해 "회사에 잘 보이고 동료들에게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며 생존경쟁에 스스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략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이 개인주의화되고 보수화된 진정한 이유다.

따라서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의 퇴행은 조합원들의 개량화로부터 야기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무엇이 결코 아니다. 현장 활동가들이 새롭게 재형성되고, 그들이 지난 시기의 노조운동이 안고 있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해 내려는 진지한 실천들을 지속적으로 전개한다면,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혁신될 수 있다. '민주노총의 주력'이라는 위상에 걸맞는 투쟁력을 회복해 낼 수 있다. 나아가 정치총파업의 중심투쟁력을 형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실천방향 속에서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을 혁신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조합원들의 절실한 요구들을 앞장서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그 해결을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해 나가야 한다.
이를테면 근골격계 질환 집단요양 등 노동자 건강권 실현 투쟁, 적정 인원 확보 및 노동강도 완화 투쟁, 실질 노동시간 단축 투쟁 등을 들 수 있겠는데, 사업장마다 특수한 역사와 조건이 있는 만큼 '절실한 요구들'은 다양하게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착실한 폭로와 선동 작업을 토대로 대중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가운데 이러한 투쟁들을 비타협적으로 전개해 나간다면, 전략사업장 노조운동의 전투적인 기풍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협조주의 개량주의 세력들을 조합원 대중 속에서 타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해당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및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 연대하고 엄호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고 투쟁에 나서는 것은 '정리해고->비정규직 확대'로 압축되는 '노동의 유연화' 전략을 결정적으로 타격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강화하는 것이고, 조합원들이 개인주의화로 치닫는 원인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계급적 단결'의 원칙을 가장 기본적인 데서부터 실천해 나감으로써, 조합원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협조주의 개량주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보수적인 특권의식'을 해체하고 '노동자 계급 의식'을 다시 진지하게 확산시켜 나갈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직 초보적인 조직화와 투쟁조차 만들지 못한 사업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행해지는 온갖 불법행위와 차별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선동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정한 조직화를 이루고 투쟁에 나서기 시작하는 사업장에서는 자본의 탄압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엄호해 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당한 정도의 조직화를 이루고 투쟁력을 갖추게 된 사업장에서는 해당 사업장 노동운동의 동등한 주체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충분히 인정하면서 상호 지원 연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별도의 노동조합을 건설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정규직 노조에 결합할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어느 경우를 선택하든 철저히 존중해야 한다. 나아가 임단협 투쟁을 공동으로 전개하고 구조조정에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함께 쟁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우선 해고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동의하는 배신적 행위를 막아내야 함은 물론이다.
셋째, 자본의 치밀한 노무관리 시스템을 무력화시켜 가면서 현장주도권을 회복 강화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총회 개입 등 노조에 대한 자본의 노골적인 지배개입 행위들을 중단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규탄이나 항의 수준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골적인 지배개입 행위들이 나타날 때마다 총력전을 펼쳐서 책임자를 퇴진시키고 재발방지를 약속받아 내겠다는 기세로 덤벼야 한다. 아직 노조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살아 있다면 자본의 지배개입 행위에 대해서는 전면파업 등 그야말로 전면전을 불사하는 대응 전통을 지금이라도 세워가야 한다. 전면전을 해낼 수 없는 상태라면 자본의 지배개입 행위를 사회적으로 널리 폭로하고 일일이 고소고발하는 등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본이 노조 간부 및 현장 활동가들을 길들여 분열 고립 타락시키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은밀한 유혹과 거래들'이 불가능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금지사항과 위반시 징계를 명시한 '노조간부 활동수칙'을 노동조합 차원에서 채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개별 현장조직이나 노조 조직체계의 한 부분 등 먼저 결의가 될 수 있는 단위부터 앞장서 시행하면서, 전 조합원 서명운동 등 아래로부터의 압박을 확대해 나간다면, 노동조합 전체 차원의 '활동수칙' 결의도 관철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조합원들이 민주노조운동 속에서 진실한 희망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노조운동의 진실성에 대한 신뢰를 조합원들의 가슴속에서 회복시켜 내야 한다. 새롭게 재형성되는 현장 활동가들은 "정말 끝까지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조합원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대세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원칙과 대의를 일관되게 견지하며, 특히 자기비판에 엄격해야 한다. 비정규직 지원 연대나 상급단체 지침 이행처럼 당장은 조합원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물론 그러한 투쟁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충분하게 알려 나가는 가운데) 일관되게 계급적 단결의 원칙을 견지해 나가야 한다.
신뢰받는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단결이 다시 가능해 보일 때, 전략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자 계급의 힘에 대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계급윤리를 강화시키며 가슴속에 묻어둔 상상력을 새롭게 분출해 내게 될 것이다.

한편 '중소영세사업장 노조 혁신'에 대한 관점은 '전략사업장 노조 혁신'에 대한 관점을 응용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므로 생략한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에 대해 정리해 보자.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대중운동의 일 주체로 일어서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형태가 독자적인 노조의 결성이나 기존 노조에의 가입 등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에 이것을 포괄하는 의미로 '주체화'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오늘날 비정규직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지만, 이미 한국 노동계급의 보편적인 존재형태로 되어 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속되는 한 그 추세가 갈수록 강화되어 나갈 전망이다. 민주노총 스스로가 "민주노총의 노동자계급 대표성이 위기에 놓여 있다"고 밝히고 있듯이,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를 대규모로 이루어 내는 것은 한국 노동계급 대중운동이 반드시 풀어야 할 절대적인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체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전개되어 왔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과들이 축적되고 있지만, 아직 그 한계는 너무나 뚜렷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률은 대략 0.1%를 전후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초과착취와 차별의 부당함에 대한 사회 전반의 공감대가 높아지고, 노동운동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의 중요성이 보편적으로 강조되기에 이르렀지만, 그것이 실제 주체화의 뚜렷한 진전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실 비정규직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의 조건들을 고려할 때, 어떤 중요한 전환점이 없다면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가 폭발적으로 진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 전환점이 '정치총파업'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총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를 위한 실천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조직적인 성과를 하나씩 축적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속에 강력한 저항과 반역의 불씨를 심을 수 있는 파급력 있는 투쟁들을 성과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치총파업의 국면에서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은 기본적으로 조직화를 점진적으로 확대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현대중공업 노조의 골리앗 투쟁이 천만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결코 지울 수 없는 강력한 영감을 남겼던 것처럼,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강력한 파문을 일으키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상징적인 투쟁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우리도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체념을 던져 버리고 투쟁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가슴 깊숙한 다짐과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투쟁들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총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를 위한 실천역량들은 산만하게 분산되기보다 파급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부분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고강도의 투쟁을 만들어 내고 또한 투쟁을 승리하여 그 성과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 들어가야 한다.

한편 작은 규모라 하더라도 전국 곳곳의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를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갖는 중요성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사실 비정규직만의 주체화로 독립된다기보다는,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중소영세사업장들과 노동운동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는 다양한 산업의 현장들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르지 않고 함께 주체화해 나가는 형태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이 이러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당원 대중들을 현장 활동가로 육성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노조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투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조직력으로 그러한 투쟁 하나하나를 강력하게 지원 엄호하고 승리로 이끌어 성과를 착실하게 축적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혁신'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
민주노총 혁신은 단순히 민주노총 지도부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을 구성하는 단위노조들이 혁신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지도부의 교체는 사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전략사업장 노조 혁신, 중소영세사업장 노조 혁신,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화 등이 성과있게 축적됨으로써 민주노총은 아래로부터 혁신되어 나갈 것이다. 그러한 힘들이 축적되면 민주노총의 상층 지도부를 교체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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